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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을 찾아서]윤애순 장편소설 '예언의 도시'…문학동네상 수상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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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욕망에 어제와 오늘이 있고 서울과 프놈펜이 따로 있을까. 배신을 잉태하고 좌절을 낳지만 새로운 사랑도 싹 틔우기에 인간의 욕망은 시공을 초월, 인간의 삶을 한 통속의 큰 줄기로 흐르게 한다.

까마귀 떼 같은 비구름이 순식간에 열대의 태양을 칠흑으로 바꾸는 곳, 쏟아지는 빗줄기를 타고 '킬링필드' 의 원혼 (寃魂) 들이 내려올 것 같아 허공에 총질을 해대는 곳, 지옥 같은 그 곳에서도 욕망은 펼쳐지고 있다.

장편소설 '예언의 도시' (문학동네 刊) 는 우리 소설 최초로 캄보디아를 배경으로 한 욕망과 사랑, 모험과 음모의 비극적 대서사시다.

89년 자유시장경제를 채택했지만 권력다툼으로 지금도 총성이 멈추지 않는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작가 윤애순 (尹愛淳.42) 씨는 1년 가량 보냈고 이 작품으로 제3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피가 코끼리의 배를 적시도록 흐른 후에야 서쪽으로부터 구원이 올 것이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는 예언으로 시작된 소설은 20여년전 크메르루즈의 도륙 현장을 뒤로 하고 오늘의 프놈펜을 그리기 시작한다.

사회주의는 몰락했지만 새로운 세상은 오지 않고 자본의 병폐만이 들끓는 그 곳에 저마다의 상처를 안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사랑에 실패하고 조국의 혁명에 뛰어들었던 '타' , 그의 딸인 벙어리 처녀 '스라이' , 한국에서의 실패한 삶을 보상하려 밀입국한 '정훈' , 외교관 부인으로 남부러울 것 없으면서도 가족사적 상처를 안고 있는 '숙영' 등 현지인과 한국인이 어우러지며 욕망과 좌절의 드라마를 펼친다.

현지인 명의로 사업을 하기 위해 스라이를 끌어 들인 정훈은 그러나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프놈펜에 한국 공관이 개설되면서 숙영이 찾아 들고 얼핏 강해만 보이는 정훈에게서 아픔을 발견한 그녀 또한 그를 사랑하게 된다.

부패한 관료들 사이를 줄타기하며 사업을 키우던 정훈은 성공을 눈앞에 둔 채 더 큰 지하경제 조직의 희생양으로 죽음을 맞게 되고 스라이 역시 정훈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는다.

숙영은 두 사람이 남긴 아이를 안고 메콩강을 바라보며 그것이 실패도 끝도 아닌 사랑으로 이어지는 삶의 거대한 흐름임을 깨닫는다.

윤씨는 여성작가 답지 않게 선이 굵고 속도감 있는 문체로 등장인물들을 실패한 혁명의 도시이자 욕망의 거대한 덩어리인 프놈펜과 접속, 공간 자체를 살아 움직이게 해주고 있다.

특히 독특한 세시풍속과 우기 (雨期)가 되면 거꾸로 흐르는 톤레삽 강등 곳곳에 배치해 놓은 낯선 나라의 정서와 풍취에 대한 정보가 읽을 맛을 더해준다.

양지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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