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경제기획·조정 강화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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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물론 정부도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리고 정부조직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하나의 제도적 장치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정부조직개편은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선별하는 정부역할의 정립과 정부역할 수행의 효율성 평가 및 전망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

일찍이 존 메이나드 케인스는 "이 시점에서 경제학자들에게 주어진 주과제는 정부가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새로이 구분하는 것" 이라고 한 바 있다.

이는 정부역할의 정립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닐 뿐 아니라 시대상황 변화에 따라 정부역할 자체도 달라진다는 것을 함축한다고 볼 수 있다.

애덤 스미스 이래 경제학의 주류를 이뤄온 신고전경제학파 (新古典經濟學派) 의 최소간섭주의에 입각한 '작은 정부 원칙' 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실제 정부가 해야 할 일들을 추려내고, 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적절한 정부조직을 마련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것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국내외 여건이 급변하는 상황 아래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조직개편은 충분한 준비과정을 필요로 한다.

적어도 경제부처 조직개편에는 행정조직 전문가에 더해 국제적 안목을 가진 경제이론가는 물론이려니와 실제 경제부처를 맡아본 경륜있는 전.현직 고위정책담당자, 그리고 정부업무의 수요자며 경제정책 집행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민간기업인.금융인 등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수 있는 과정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재 서둘러 추진되고 있는 정부조직개편 과정에 아쉬움을 갖게 된다.

정부조직개편과 관련해 작은 정부 원칙은 물론 강조돼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역할을 분명히 필요로 하는 분야의 조직개편에서는 작은 정부 원칙에 더해 효율성의 원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작은정부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을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할 정도로 조직과 인원을 감축하는 또 다른 우 (愚) 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정부가 하지 않아도 될 분야는 과감히 털어내고 조직을 줄이되, 정부의 역할을 꼭 필요로 하는 분야에 따라서는 업무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조직과 인원의 확충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정부조직개편안과 관련해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오히려 강화돼야 할 경제정책의 기획.조정 기능과 조직이 약화된 측면이다.

현재 우리는 급속한 세계화 추세속에서 세계경제여건 변화를 미리 내다보고 이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정책대안을 마련하는 정부의 정책기획업무가 과거 어느때보다 더욱 중요해진 시대를 맞고 있다.

또한 나날이 더욱 다원화되고 복잡해지는 정치.사회구조속에서 정부부처간, 정부와 지방정부간, 그리고 각종 이해집단간의 상충되는 견해와 이해관계를 거시적인 차원에서 신속히 조정함으로써 국가 경제정책의 일관성과 효율성을 기할 수 있는 정책조정기능의 중요성도 더욱 강조돼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정부의 대내외 경제정책 기획.조정기능은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일임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필자는 경제정책을 거시적인 차원에서 기획.조정하고, 나아가 국가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기획.조정부' (가칭) 를 신설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한번 더 긴급 제언하는 바이다.

아울러 예산기능도 이렇게 중요한 경제정책의 기획.조정기능과 총괄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경제기획.조정부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것은 국가예산기능을 가능한 한 정치논리가 아닌 경제논리에 따르도록 한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스런 것이라 하겠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외환.금융위기도 충분한 사전검토 없이 마련된 94년 경제부처개편 결과 약화된 경제정책의 기획.조정기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사공일〈세게경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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