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98 미워도 다시한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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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30대 재벌이 14일 새 정부측의 비상경제대책위에 구조조정계획안을 제출함으로써 대기업 구조조정은 이제 제2막으로 접어들었다.

비대위와 재벌간에 경영 투명성과 경쟁력 제고방안을 둘러싼 신경전과 힘겨루기가 치열했던 제1막은 일단 비대위의 '개혁의지' 가 관철되는 선에서 한고비를 넘은 셈이다.

이제는 한계사업정리, 인원.조직정비, 상호지급보증 해소 등 기업측의 가시적 변화를 본격적으로 이끌어낼 때가 된 것이다.

구조조정을 실행하는 단계에서 새 정부측이 신경써야 할 것은 2막의 주인공이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 돼야 한다는 인식이 아닐까 싶다.

오늘의 위기를 초래한 주범중 하나가 재벌이었지만 위기를 벗어나는 원동력 역시 기업에서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국제통화기금 (IMF) 의 상륙과 함께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는 미국식 구조조정도 결국 실물경제의 주역인 기업인의 탁월한 지도력과 '혁신 의지' 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GE의 웰치, IBM의 거스너, GM의 스미스 회장 등 혁신적인 기업가들의 결단력과 개혁의지가 위기에 처한 기업을 회생시켰고 나아가 경제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소비자의 욕구에 맞는 상품을 만들었고 소프트.정보산업 등 성장산업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기업가적 비전을 제시했으며, 주력기업도 팔아치우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결단력을 발휘했다.

한 경제전문가는 "미국의 부흥과 90년대 초반 버블 (거품) 붕괴 이후 지금까지 헤매고 있는 일본경제간의 명암도 기업가의 지도력 차이에 있다" 고 단언한다.

80년대말부터 미국에서는 수많은 혁신적 기업가가 나온 반면 일본은 기업가들의 개혁 의지가 박약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기업인도 지금 생사를 건 일전을 벌이고 있다.

일단 레이스가 시작된 지금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사기를 높여주는 일이 아닐까. 이 레이스를 공정하면서도 효율적으로 관리하겠다고 하는 새 정부측이나, 생계와 인생을 기업에 걸고 있는 일반근로자들이 대기업 오너.경영자들을 '문어발 경영과 무분별한 외화차입으로 경제난국을 초래한 죄인' 이라고 질책하기만 해서야 레이스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미국의 경제적 성공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성공한 사람에게 아낌없이 갈채를 보내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을 한 것은 아닐까. 이제 우리도 기업가들이 뛸 수 있도록 응원을 보내야 할 때다.

양선희〈경제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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