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왜 이리 어둠침침한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3면

기업의 투명성을 말하지만 사실 가장 투명해야 할 부분은 공공 분야다. 지금 이 정권의 모습을 보면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은 투명치 않다는 증거다. 한나라당이 보선에서 전패했다. 다른 곳은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이 정권의 본 고향 바로 옆인 경주에서까지 패배한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변명은 있을 것이다. 여론조사가 잘못됐다느니, 경주 민심을 잘못 알았다느니….

그러나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공천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번연히 당선될 수 있는 사람을 놔두고 엉뚱한 사람을 공천했기 때문이다. 왜 떨어질 사람을 공천했을까. 여기에 바로 한나라당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당이라면 당연히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다. 이를 위해 합당한 사람을 투명하게 공천하면 된다. 그러나 여기에 사적인 이해득실과 감정이 끼니 공천이 왜곡된 것이다. 그러니 설명이 복잡해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투명한 공천이 안 됐기 때문이다. 당이 공당이 아니라 사당화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 수사를 놓고 검찰과 국세청이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면 더욱 이해가 안 간다. 검찰 말로는 박연차의 세무조사를 한 국세청이 그 내용을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범법 사실 전체를 검찰에 고발치 않고 일부를 뺐다고 한다. 박연차 개인과 법인을 함께 고발했다가 뒤늦게 법인에 대한 고발 취소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누구의 로비 때문일까. 무슨 꿍꿍이속 때문일까. 국세청의 말은 다르다. 검찰에 박연차 개인과 그 회사를 모두 고발했고 그 내용을 바꾼 적이 없다는 얘기다. 같은 정부기관인데 누구의 말이 옳은가. 왜 이리 어둠침침한가. 범죄 사실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고발하면 될 일을 선별적으로 했다면 무언가 감추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검찰도 투명치 않은 건 마찬가지다. 박연차 수사 과정에서 검찰 식구들도 돈을 받았다는 얘기가 흘러 나왔다. 가장 떳떳하고 투명한 조치는 먼저 문제가 있는 제 식구부터 처리하는 것이다. 그 뒤에 여권이 관련이 있다면 여권 인사들을 처리해야 한다. 그러고 난 후 노무현을 처리해야 비로소 투명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법대로 처리하기로 결정했으면 법대로 처리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구속 여부에 대해 여론을 떠본다느니, 검찰 내부의 분란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느니 하는 말들은 다 무엇인가. 국세청은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면 되지만 검찰은 누가 압수수색을 할 수 있는가.

투명하면 누가 들여다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투명치 않으면 변명이 나오고, 설명이 구차해지니까 복잡해지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이 정부는 권력의 어두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임 대통령은 걱정이 없어야 한다. 내 뒤에 누가 권력을 이어가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공정하게 심판만 보아 주면 된다. 스스로 부정에 연루되지 않았다면 검찰이 누구를 구속하든 관계할 일이 아니다. 법대로 처리하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이런 단순한 일이 무어가 그리 어려운가.

1953년 퇴임한 미국의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의 퇴임 후 처신이 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퇴임한 그해 여름, 그는 중부 미주리주에서 보통 중산층이 타는 크라이슬러 승용차 지붕에 여행가방을 싣고, 스스로 운전하며 동부로 부인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코카콜라를 사 마시고, 허름한 모텔에서 잠을 자고, 도로변 식당에서 일반인과 섞여 식사를 했다. 전직 대통령을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는 기업에서 고문 자리를 제의했음에도 대통령직을 상업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거절했다. 아직 대통령 연금법이 없던 시절이라 퇴직 후 그의 수입은 육군연금 월 111달러뿐이었다. 그의 이러한 청빈과 대통령직에 대한 존중에 감화되어 미 의회는 그해 퇴직 대통령 예우법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퇴직 대통령은 지급되는 연금과 사무 경비로 품위를 지키며 살 수가 있다. 명목이야 여하간에 대통령이 돈을 받았다는 사실은 무조건 사과하고 반성할 일이다. 그런데도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아서 이리 나라를 시끄럽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참으로 명예를 모르는 사람이다. 재임 기간 동안 투명치 못하면 퇴직 후 반드시 문제가 된다. 감추고 싶었던 진실은 권력이라는 가리개가 사라지면 유리창 속처럼 드러나게 되어 있다. 우리 정치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 진리를 이 정권 사람들 역시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문창극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