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언 미국 국방장관, 러시아 국방장관에 "이라크 공격 무모" 면박당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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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라크 공격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러 모스크바에 들른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이 러시아 국방장관에게 혼쭐이 났다.

12일 모스크바의 러시아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양국 국방장관 회담에서 이고르 세르게예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거센 공세로 일관했다.

기자들이 지켜보는 공개석상에서 세르게예프 장관은 "미국은 이라크 공격으로 초래될 결과들에 대한 준비가 돼 있느냐. 공격을 실행하면 미.러 군사협력관계가 심각하게 훼손될 것" 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이어 "미국의 강경자세가 도대체 세계의 안정과 안보강화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느냐" 고 힐난했다.

기습공격을 받은 코언 장관은 찜찜한 표정으로 듣기만 하다가 "아주 적절한 질문" 이라며 어색하게 입을 연 뒤 "이라크가 유엔 결의안을 무시하고 무기사찰단과 숨바꼭질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옳은 일이냐" 고 응수했을 뿐이다.

코언 장관이 봉변당한 형국이 되자 현장을 지켜본 미국 기자들은 "코언의 응수가 적절치 못하다.

세르게예프의 협박성 발언에 보다 강력하게 대응했어야 했다" 고 흥분했다.

특히 CNN의 제이미 매킨타이어는 "세르게예프가 코언에게 훈계한 꼴" 이라 했고 또 다른 미국기자는 "분위기가 냉전시절로 돌아간 느낌" 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세르게예프의 이날 언동으로 즉각 미.러관계가 냉각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대두됐다.

이를 의식한 듯 백악관은 "이라크 문제를 놓고 미국과 러시아간에 건널 수 없는 깊은 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라크 공격이 강행되면 양국 관계에 심각한 파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 = 김석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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