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투자 막는 한심한 행정]中.투자유치의 두모습(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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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해 7월 북아일랜드에 위성방송 수신기 생산공장을 세운 벤처기업 ㈜건인은 그때 일을 생각하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유럽연합 (EU) 내 공장부지를 물색하던 중 변대규 (卞大圭) 사장은 지난해 1월 우연히 서울소공동에 있는 북아일랜드 산업개발청 한국사무소에 들렀다가 솔깃한 얘기를 들었다.

“외국기업들이 원하면 언제든 입주할 수 있도록 이미 공장건물을 지어놓았다” 는 설명과 함께 그곳 직원들은 卞씨를 마치 칙사 대하듯했다.

한달 후 건인 실무진은 북아일랜드를 방문했고, 이어 3월에는 卞사장이 직접 그곳에 가서 3백만파운드 (약 78억원) 짜리 투자계약을 했다.

조건인즉, 2년간 공장을 공짜로 빌려주고 설비투자비 일부를 정부가 보조해준다는 것이었다.

행정절차도 자신들이 크게 준비할 게 없었다.

산업개발청 담당공무원이 모두 처리해뒀기 때문에 건인측은 준비 서류만 읽어보고 사실 확인만 거치면 충분했다.

그후에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7월에는 공장준공식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자리에는 북아일랜드 경제장관이 직접 참석, 감사 연설까지 했다.

첫 상담부터 공장 준공까지 걸린 기간은 불과 6개월. 건인 관계자는 “공무원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고 말했다.

그러면 한국에 투자하러 온 외국기업들은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할까. 정부측에서조차 '신속한 투자유치 성공 사례' 로 꼽고 있는 엥겔사의 경우를 보자. 오스트리아 플라스틱 사출업체인 이 회사는 2천만달러짜리 투자 계약을 하는데만 1년반이 걸렸다.

이 회사가 처음 무공을 통해 접촉을 시작한 것은 96년 2월. 땅값 결정 등의 문제를 놓고 청와대.재정경제원.통상산업부.경기도.무공 등 수많은 관계부처를 찾아 헤매야 했다.

또 이들은 입장이 제각각 달라 일일이 호소하며 설명해야 했고 막판에 투자포기 의사를 비추고서야 가까스레 타협점을 찾아 지난해 7월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아직도 공장 설립까지는 얼마가 더 걸릴지 모른다는 게 이 회사측 이야기다.

그나마 이는 아주 운이 좋은 경우고 다른 경우 2~3년은 보통이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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