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해코지 다 지켜본다” ‘지킴이집’ 1년 절반의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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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979년 호주 빅토리아주에 위치한 우라나파크 초등학교. 이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에 대한 범죄 12건이 잇따라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지역 사회에서는 ‘우리 마을의 어린이를 함께 보호하자’는 운동이 시작됐다. 운동은 ‘세이프티 하우스(Safety House)’라는 주민 자치 조직의 창설로 이어졌다. 회원이 된 가정은 범죄 위험에 놓인 어린이를 임시로 보호해 주고, 경찰과 지방 정부에 신고하도록 했다. ‘우리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용은 지역 공동체가 부담했다. 세이프티 하우스로 지정된 가정집이나 가게는 ‘노랑 세모’ 표지판을 달았다. 호주 전역에서 7만여 가정집과 가게가 노랑 세모를 달고 있다.

지난해 3월 경기 안양시에서 초등생 이혜진·우예슬양을 납치·살해한 범인 정성현(40)이 붙잡혔다. 한 달 뒤 경찰은 전국 초등학교 인근에 있는 문구점 등 가게를 ‘아동안전 지킴이집’로 선정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세이프티 하우스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지킴이집으로 선정된 가게에는 지킴이집이란 사실을 알리는 스티커와 입간판을 설치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전국적으로 2만4417개의 지킴이집이 운영 중이다. 지난해 4월부터 올 3월 말까지 성추행범을 비롯해 38명을 검거하는 데 기여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달 24일 전주에서 일어난 어린이 성추행 사건이다. 전주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노점상 김모(63)씨가 A양(8)을 유인해 추행을 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지킴이집으로 선정된 문구점 주인 박모(41)씨가 “노점상이 평소 아이들을 성추행한다”는 소문을 듣고 김씨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다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경찰은 김씨를 구속하고 박씨에게 표창장과 함께 신고 보상금 100만원을 지급했다. 지난해 9월 광주광역시에서는 지킴이집 업소 주인의 도움으로 학교 앞에서 초등학생의 돈을 빼앗은 청소년들을 검거하기도 했다.

경찰은 지구대를 통해 지킴이집들에 매뉴얼을 나눠주고 “일이 있으면 신고하라”고 부탁하고 있다. 지구대당 4명씩 지킴이집 담당이 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재동초등학교 근처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박모(39)씨는 지난해 경찰 요청에 따라 지킴이집을 하게 됐다. 박씨는 “등·하교를 하는 아이들을 한번이라도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된다”고 말했다.

현재 아동안전 지킴이집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역 사회와의 연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자치조직을 만든 외국과 달리 정부 주도로 지킴이집 사업이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수진(39·서울 상도동)씨는 “ 같은 동네에 사는 학부모나 학교 선생님에게서 지킴이집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아직 과도기적 성격이 짙지만 지킴이집 제도가 정착되면 지역 사회의 ‘치안 네트워크’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강인식·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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