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노 전 대통령 100만 달러 사용처 일부 확보한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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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10일 “권양숙 여사의 소환 조사가 당초 예상보다 늦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측에서 100만 달러 사용처와 관련해 더 확인해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며 소환을 늦춘 이유를 설명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10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로 자동차를 몰고 들어가고 있다. 문 전 실장은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대답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노 전 대통령 측은 8일과 9일 두 차례 e-메일로 100만 달러 사용처 내역을 검찰에 제출했다. 그런데도 소환 일정이 늦춰졌다. 검찰과 노 전 대통령 측이 막판까지 100만 달러 사용처를 놓고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측이 보낸 자료에 따르면 권 여사가 2007년 6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전달받은 100만 달러 중 40만 달러는 당시 미국에 있던 장남 건호씨와 딸 정연씨 생활비로 보내졌다. 이 점은 검찰과 노 전 대통령 측 모두 인정한다.

권 여사는 추가로 10만~20만 달러를 자녀가 한국에 왔을 때 건네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 증빙자료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 나머지는 기존 주장대로 빚을 갚는 데 사용했다고 밝혔다. 역시 개인 채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었다고 한다.

또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위해 자신이 대신 받았다고 진술한 3억원을 해명하지 않았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홍 기획관은 “노 전 대통령 측이 보낸 자료는 진술서 형식이 아니다. 우리가 직접 조사할 때 참고 자료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빙성이 높지 않다는 뜻이다.

그동안 검찰은 100만 달러 사용처를 규명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지난달 7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100만 달러는 권 여사가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받은 것”이라고 먼저 밝히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권 여사도 지난달 11일 검찰에서 똑같은 내용을 진술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소환 조사 때 스스로 용처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검찰이 송금증 등 100만 달러의 일부가 자녀들에게 건너갔다는 다양한 증거자료를 제시하자 노 전 대통령이 이를 인정한 것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100만 달러를 받을 당시 채무를 알고 있었다면 100만 달러가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을 보고 준 뇌물을 입증하는 정황이 된다. 만일 검찰이 박 회장에게서 확보한 진술대로 100만 달러가 ‘애들 집 사는 데 필요한 것’이었다면 노 전 대통령이 이 돈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자식 문제는 부부의 공동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찰과 노 전 대통령이 100만 달러 사용처에 유난히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현금으로 오고 갔기 때문에 구체적인 자금 흐름을 추적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나머지 60만 달러 용처에 대한 일부 자료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바탕으로 이번 주 안으로 권 여사를 비공개로 다시 소환해 구체적인 내용을 조사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신병처리가 다음 주로 넘겨질 가능성도 있게 됐다.  

이철재·이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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