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인물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신정부의 인선 (人選) 이 진행되고 있다.

와중에 "한국에 정말 인물없다" 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세계화를 외쳤지만 금융위기에 직면해 월가에 경험있는 전문가 한 사람을 찾아내지 못했던 우리. 전방위 (全方位) 외교라는 그럴듯한 노선을 설정해 놓고도 국제기구에 자리맡길 세계인 (世界人) 찾는데 어려움 겪는 나라. 반세기 내내 통일을 부르짖었건만 북한연구조차 외국전문가에게 자리내줄 형편인 한국이라면 인물없다는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키우기에 소홀했던 우리가 이제 와서 인물없다고 한다면 또다시 모든 잘못은 '네 탓이오' 일 따름이다.

금융위기도 국제사회에 내놓아 손색없는 전문가를 키우지 못하고 그나마 제한된 인재가 역량을 발휘할 분위기도 만들어주지 못했던 우리가 자초한 예상된 결과일 뿐이다.

잘난 놈 뻗어나가는 것이 배아프고 아랫사람 치켜세우는데 인색한 사회풍토에선 인물이 날 수 없다.

능력있는 이에게 길을 터주고 이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 불편하다면 잘난 사람이 능력을 발휘할 틈은 없다.

이번 위기의 원인을 방만한 기업운영과 정경유착에서 찾고 있지만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우리 자신의 어설픈 생각과 끈질긴 아집 (我執)에 있다.

압축 (壓縮) 성장을 통해 수치상으론 세계 11위 경제대국을 이뤘고 올림픽도 치른 나라지만 한꺼풀 들춰내면 스위스 치즈처럼 곳곳에 구멍투성이다.

우리의 투박한 뚝배기가 중국과 일본의 정교한 그릇과 차별화되는 아름다움이라 얘기한다지만 무한경쟁시대를 사는 우리에겐 대충대충, 그럭저럭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더구나 주위로부터 쉴 틈 없이 시달렸던 역사적 이유 때문인지 무모할 정도의 집요함도 국경없는 세계를 살아가는 데 좋은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문제가 생길 때면 밖으로 뛰쳐나가 해결책을 찾기보다 안으로 파고들어 주변에서 희생양을 찾으려 했던 지난날의 행태는 바깥세상에 대한 콤플렉스만을 부추겼다.

게다가 자기계발에 소홀한 핑계거리를 제공했을 뿐이다.

이제 이러 저런 인물들이 중책을 맡아 나라살림을 꾸려가게 된다.

선택된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잘난 인물은 물론 아닐 것이다.

하지만 기왕에 자리잡은 이들의 흠집잡는 푸닥거리를 되풀이하기엔 우리 사정이 긴박하다.

사람키우기에 인색하고 자기계발에 안이했던 우리이지만 서로 격려하며 제한된 힘이나마 모으는 지혜를 발휘해야 고난의 시절을 넘길 수 있다.

이번 시련은 우리 사회에 인재키우기를 요구하고 있다.

〈길정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