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비극도 견디리, 내게 프라하가 있다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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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호 13면

체코 프라하 시내를 가로지르는 블타바 강의 랜드마크 건물인 ‘댄싱 하우스’. 여성이 잘록한 허리를 남성의 몸에 밀착시키고 춤추는 형상이다. 네덜란드 보험회사가 지은 건물로 1996년 완공됐다. 하벨 생가도 그의 조부가 1904년에 지은 아르누보 스타일의 고급 아파트라 뛰어난 조형미를 자랑한다. 사진제공 출판사 ‘열대림’

영화 ‘아마데우스’의 배경이 된 도시는? 모차르트 교향곡 38번의 이름은?
오스트리아의 빈이 답일 것 같지만 정답은 체코의 프라하다. 모차르트는 말했다. “프라하 사람들만이 나를 알아준다”고. 그가 죽었을 때 빈 시민들은 관심도 없었다고 한다. 수많은 시민이 장례 미사를 올리며 그를 추모한 도시는 프라하였다. 이 도시를 방문했거나 하려는 이들이라면 그곳이 성 미쿨라시 성당이라고 기억해 두자.

『프라하가 사랑한 천재들』, 조성관 지음, 열대림, 272쪽, 1만8000원

체코 출신의 영화감독 밀로스 포먼이 ‘아마데우스’의 촬영 장소로 프라하를 택한 것은 단지 애국심 때문만은 아니었던 같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을 짓밟은 소비에트의 탱크는 포먼의 발길을 미국으로 돌리게 했다. 여전히 소련의 영향력 하에 있던 1980년대 초의 조국 체코에서 그는 공식적으로 ‘반역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공산체제하에 있었기 때문에 프라하는 상업 자본주의의 손때를 타지 않았다. 18세기 건축물이 그대로 있었고 20세기의 요란한 광고 간판은 없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그래서 프라하에서 춤출 수 있었다.

기자 경력 21년차의 저자가 프라하를 꼼꼼히 ‘인터뷰’했다. 이 책은 2년 전 저자가 펴낸 『빈이 사랑한 천재들』의 후속 격이다. 빈의 모차르트가 프라하를 안내한 셈이다. 프라하를 중심으로 활동한 체코의 예술가 6명의 삶을 그렸다. 그 이름은 카프카(1883~1924), 밀로스 포먼(1932~), 스메타나(1824~1884), 드보르자크(1841~1904), 밀란 쿤데라(1929~), 그리고 바츨라프 하벨(1936~)이다.

18세기 건축물도 그대로 남긴 이 도시는 19세기 이후에 태어난 이 천재들의 삶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예컨대 카프카가 법률 담당으로 14년간 근무했던 산업재해보험공단은 지금 메르큐레라는 호텔이 돼 있다. 그 호텔 214호가 카프카의 사무실이다. 쿤데라와 하벨이 단골이었다는 식당도 여전히 영업 중이다. 체코작가동맹이 있던 건물 건너편에 위치한 이 ‘밥집’은 허기진 글쟁이들에게 저렴한 양식을 제공했다는데, 그 간판 메뉴가 버섯감자튀김이라고 한다.

나치 점령하 체코 레지스탕스 젊은이들의 비극적 저항을 그린 영화 ‘새벽의 7인’(1979)을 기억하는 이도 많을 것. 주인공들이 최후로 숨어 든 곳이 프라하 신시가지 레슬로바 거리의 ‘성 키릴&메서디우스 성당’이다. 나치에 포위돼 이 성당 지하에 갇힌 두 주인공. 동지를 껴안고 서로의 머리에 마지막 총탄을 겨눠 삶을 스스로 마감한 청춘들의 모습이 애틋했던 이들, 그 추억의 중년들에게 프라하는 직접 가 보지 못했을지라도 그 도시는 이미 ‘마음의 여로’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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