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리뷰] 브로드웨이팀 '카바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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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카바레'는 두 얼굴을 가진 뮤지컬이다. 하나는 칠흑 같은 어둠이다. 손가락만 갖다 대도 "툭!"하고 흘러내릴 것 같은 스타킹, 마약에 찌든 채 몸을 파는 댄서들, 남성인지 여성인지 헷갈리는 MC(사회자). 끈적끈적한 몸놀림 속에 펼쳐지는 퇴폐적인 풍경들이다.

나머지 하나는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이다. 1930년대 나치 치하의 베를린을 향해 겨누는 비판적인 메시지, "왜 세상은 우리를 살아있게, 살아 숨쉬게 하지 않나요?"라는 절규, 삶에 대한 직시와 외면, 참여와 타협 사이에서 갈등하고 아파하는 인간 군상이다.

어둠이 짙을수록 별은 더욱 빛나는 법이다. 브로드웨이팀의 '카바레'도 이 점을 노렸다. 명(明)과 암(暗)의 극적인 대조 속에서 꺼내드는 '비수'는 한결 예리하게 번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공연은 전반부의 '어둠'보다 후반부의 '칼날'에 더 강한 느낌표를 찍고 있다.

전반에는 생동감이 덜 느껴진다. 관객은 '파격'이나 '충격'속으로 푹 잠기지 못했다. 향락과 탐닉으로 허우적거리는 카바레 분위기를 뽑아 올리기에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 너무 큰 탓도 있다. 관객은 카바레 안이 아니라 밖에서 쇼를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질퍽한 어둠은 무대만 맴돌 뿐 객석까지 덮진 못했다. '차라리 중극장 규모에서 댄서들이 객석을 누볐더라면''코 앞에서 펼쳐지는 은밀한 몸짓에 관객들이 몸을 떨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은 들었다.

중반을 넘기면서 극에는 무게감이 꽂혔다. 장면 전환은 단조로웠으나 극적인 집중력은 매서웠다. 배우들은 독일어 억양이 섞인 영어로 현장감을 살렸고,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객석을 흔들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카바레 댄서인 여주연공 샐리 볼스가 부르는 테마곡 '카바레'는 관객의 심장을 움켜쥐기에 충분했다. "인생은 카바레, 단지 카바레야. 난 카바레를 사랑해!"라는 절규는 관객이 딛고 선 삶의 지점까지 돌아보게 했다. 그것은 속옷 차림의 댄서가 카바레 무대에서 펼칠 수 있는 가장 슬픈 쇼였다. 16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3만~13만원. 1588-7890, 1544-1555.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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