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부실금융기관 예금 이자보상 제한 건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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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국은행은 당초 오는 2000년까지 사실상 전 금융기관의 원리금을 보장해주기로 한 방침을 바꿔 이자에 대해서는 일정 범위 안에서 보장해주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재정경제원에 공식 건의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정부의 원리금 전액 보장방침 발표 이후 예금주들이 금융기관의 안전성은 전혀 고려치 않고 단 한푼의 이자라도 더 쳐주는 곳으로 몰리는 등 사실상 '금리투기' 현상마저 일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편 정부는 현재 고금리 경쟁의 촉발요인이 되고 있는 은행의 신종 적립신탁의 만기를 현행 1년 이상에서 1년반 이상으로 장기화하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4일 "정부의 원리금 전액 보장이 최근 금리체계를 왜곡시켜 금리급등을 부추기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보고 원금은 보장하되 이자에 대해서는 일정 부문만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예금보장제도' 를 대폭 개선해달라고 재경원에 건의했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경원도 현행 예금보장제도가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 (moral hazard) 를 초래하고 결국 국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그러나 재경원 고위관계자는 "금융기관들이 정부 보상을 빌미로 감당하지 못할 고금리를 내세우는 경우가 있다면 곤란한 일" 이라면서도 "하지만 정부가 이미 2000년까지 원리금 전액을 보상해주기로 약속한 만큼 현재로선 방침을 번복하기 어렵다" 고 말했다.

그는 "다만 종금사처럼 영업정지 금융기관들이 고금리로 재예치하는 경우의 이자는 정부가 보상해주지 않는다" 고 덧붙였다.

하지만 금융계에선 원금은 물론 완전 보장하되 이자에 대해서는 예금자의 책임도 일정 부문 감안해 예컨대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약간 덧붙인 정도까지만 보장한다거나 ▶보장이자의 금액 한도를 정해 특히 고액 예금주의 자기 책임을 강조하는 방법 등을 생각해볼 만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IMF가 고금리 유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최근 금리급등의 한 요인에 불과하다" 며 "모든 금융기관들이 단기고금리 수신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이에 따른 역마진을 막기 위해 대출금리도 올리기 때문에 기업 및 가계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고 지적했다.

한편 재경원은 신종적립신탁 처리문제를 조만간 매듭짓고 이를 기업어음 (CP) 활성화 방안 등 곧 확정할 금융시장 안정대책에 포함시켜 함께 발표할 예정이다.

박의준·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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