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현 15년만의 새앨범 '김삿갓'…록으로 빚은 전통의 소리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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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신중현이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해남에서 섬진강, 지리산에서 대관령까지 방방곡곡을 누비며 손수 캠코더로 찍은 동양화풍 영상이다.

여기다 막 취입을 끝낸 '김삿갓' 의 수록곡들을 더빙했다.

절세의 가객이 유랑했던 루트를 그대로 따라간 영상기록에 삿갓 쓴 모델을 등장시켜 그럴듯한 '연출' 도 했다.

83년 '세 나그네' 이후 15년만의 신보를 내놓은 그는 이 뮤직비디오로 신보에 대한 기대의 감정을 드러낸다.

그는 89년에 '겨울공원' , 93년에 '무위자연' 을 내긴 했지만 모두 리메이크 음반이었다.

당시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고 음반 이야기가 나오면 이내 화제를 돌려버렸다.

생활고 속에서 부실한 장비로 만든 두 음반은 그의 성에 차지 못했다.

그러나 '김삿갓' 을 든 그의 얼굴은 생기가 돈다.

그는 요즘 거처인 서울 문정동 스튜디오 '우드스톡' 에 자주 지인들을 불러 수록곡을 틀어주고 있다.

80년을 마지막으로 중단했던 단독공연도 재개하겠다고 의욕을 보인다.

그 스스로 만족해하는 음반에 대한 외부의 평은 “록으로 빚어낸 한국 전통음악의 숨결” 로 집약된다.

흑색과 백색, 두장의 음반에 수록된 19곡은 '돈' '금강산' '비봉폭' 등 김삿갓의 명시에 신중현이 한두개 코드만을 써서 곡을 붙인 것. 기타.드럼 등 양악기만 썼는데도 국악 맛이 진하게 우러나는, 절묘한 크로스오버 곡들이다.

“천리길 행장에 남은 일곱푼을/들주막 석양에 술을 보았으니/어찌하겠는가” (간음야점) 처럼 빈곤한 가운데서도 풍류를 잃지않는 한국인의 멋이 일관된 주제다.

연가 (戀歌) 도 있지만 노골적이지 않고 아취가 있어 우리 멋과 상통한다.

노래 멜로디는 궁상각치우, 5음계 국악선율로 환치되는 심플한 구조로 80년대 이래 신중현이 줄곧 추구해온 방식이다.

그러나 깊이는 한층 깊어졌다.

그가 직접 프로그래밍한 드러밍은 4박자 록리듬을 3박자 타령조로 들리게하는 조화를 부린다.

여기 얹혀 흐르는 신중현의 목소리는 이 땅에 뿌리박은 육체만이 낼 수 있는 표표한 소리결 그것. 충만한 힘과 항심 (恒心)에서 우러난 절제가 균형을 이룬 노래에서는 논배미에서 김매는 촌로의 흥얼거림이 들려나온다.

투박하지만 구수하기 그지없는. 신보는 그늘도 안고있다.

신중현하면 사이키델릭 록을 연상하는 전통적 팬들에게 신보는 지지를 얻지 못할지 모른다.

빠르고 되바라진 노래들에 묻혀사는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음악도 아니다.

그러나 신보는 적어도 음악적인 면에서는 이런 그늘을 한참 뛰어넘는 경지에 있다.

사라져가는 국악과 기세등등한 록음악 사이에서 양자를 칼날처럼 아우른 경계선상의 음악인 것이다.

국악평론가이자 신중현 연구가인 노재명씨는 “국악기의 어설픈 혼용없이 순수한 록 선율만으로 국악의 깊은 맛을 재현했다는 점에서 현대국악의 3대 명반에 꼽힐 만하다” 고 극찬했다.

신중현은 '김삿갓' 출시를 계기로 그동안의 은둔생활을 벗어나 대중과의 다양한 만남을 계획하고있다.

특히 92년 국민 화합을 염원하며 지은 20분짜리 대곡 '너와 나의 노래' 를 새 정부 출범 뒤 대형무대를 통해 발표할 생각이다.

여기에는 그의 뜻에 동참하는 대중음악인 1백여명이 참가해 하나됨의 합창을 하게된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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