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기술 대만유출에 나타난 문제…보안망 구멍 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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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국내 반도체업체들의 생산기술 일부가 대만으로 유출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첨단기술 보안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일부 신제품 경쟁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겨루고 있는 전자.통신업계 등은 그동안 국내 기술이 음성적으로 유출될 가능성에 대해 반신반의해왔으나 이번 사건으로 국내 기술의 해외유출이 표면화된데 대해 큰 충격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업계는 국제 산업스파이들이 우리 기술 수준이 선진국보다 한발 앞선 반도체.디지털 휴대전화 생산방식인 CDMA 등의 관련기술을 빼내가려고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번 반도체기술의 대만유출 사건 역시 대만 반도체업체들이 메모리반도체의 열세를 일거에 만회하기 위해 국내 퇴직 연구인력에 손을 뻗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대만은 세계최대 컴퓨터부품 생산국으로서 메모리반도체 수요를 무기로 한국을 추격하기 위해 90년 이후 정부가 앞장서 반도체산업에 파격적인 지원을 해왔으나 별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만의 반도체 생산 11개 업체중 상당수가 아직도 일본의 설계도면을 빌려 조립생산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어 대량생산 기술 미비와 채산성 악화로 고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만이 최근 64MD램 시제품을 개발하고도 양산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반도체 웨이퍼의 칩 생산성 (수율) 이 한국반도체 업체에 크게 뒤져 있기 때문이다.

대만 반도체업체들은 이에 따라 세계 반도체시장의 주력제품이 16MD램에서 64MD램으로 본격 전환되는 올 하반기 이전에 64MD램 양산화가 최대 과제로 돼왔다.

더구나 대만에 반도체 기술을 이전했던 일본 업체들이 메모리분야에서 손을 떼 비 (非) 메모리 반도체에 주력할 움직임을 보여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을 따라잡기가 더욱 어렵게 돼 기술유출을 시도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 국내 반도체업계의 판단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삼성전자와 일본 NEC만이 갖고 있는 첨단 웨이퍼 칩 생산기술이 이번 사건으로 대만에 유출됐다면 대만 반도체업계의 경쟁력이 상당부분 향상될 것" 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검찰수사 결과 64MD램 전체회로도와 공정체크리스트는 물론 2백56MD램과 관련한 자료까지 빼돌리려 한 점이 밝혀져 대만업체들의 집요한 반도체 기술유출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최근들어 주요 계열사 연구소의 출입을 통제하고 주요연구자료에 대한 열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기술보완 체계 강화에 나서고 있지만 내부자에 의한 기술유출 방지는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정보전략 컨설팅업체인 IBS컨설팅그룹 윤은기 (尹恩基) 소장은 "국내 기업들이 퇴직 연구인력에 대한 관리감독을 현실적으로 할 수 없는 처지" 라며 "특허 등 기술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고 지적했다.

고윤희·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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