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2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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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순간적이나마, 몸을 파는 논다니라 하더라도 박색은 아니기를 기대하였던 스스로가 계면쩍어 혼자 실소하고 말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렇다고 여자에게 본색을 밝히라고 채근하고 들 수도 없었다.

남녀가 한 이불 속에서 옷까지 벗은 채로 밤을 보내고 있었으면서 새삼스럽게 누구냐고 묻는 것은, 판별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선 구차스럽게 보일 질문이었다.

얼버무리려는 수작으로 오해받기 십상인 그런 질문은 한철규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이불 자락을 사타구니에 끼고 벽 쪽으로 돌아누우며 눈을 감았다.

지난 밤의 폭음 속으로 희석되어버린 기억의 끝자락을 잡아채기가 쉽지 않았다.

두통을 의식하는 찰나, 여자가 그에게로 다가누웠다.

그리고 촉촉하게 땀기가 밴 손바닥으로 그의 등을 쓸어주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뒤숭숭하던 가슴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지난 밤의 술자리가 희뿌옇게 떠올랐다.

취기가 도도할 무렵에 변씨가 걸찍하게 쏟아놓았던 육담이 생각났다.

“살송곳 맛이 박하사탕을 입에 문 것처럼 화끈하고 쫄깃쫄깃하다는 것은 옛날의 청상과부들이라고 몰랐겠소. 요새 같은 한겨울 긴긴 밤을 독수공방하고 혼자 밤을 지새우다보면, 눈에 보이는 것은 죽은 서방놈이 잠깐 맛보여주고 간 생고기뿐이더라 이거요. 천장을 쳐다봐도 그것이 나타나고 호롱불을 바라봐도 그것만 어른거렸겠지. 그러나 어떻게 하겠소? 종놈을 불러다가 육허기를 채우겠소? 그렇다고 상피 (相避) 를 붙겠소? 딴 방도가 있을 턱이 없었지. 종놈이라도 불러 생고기 맛을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던 과부댁은 생각다 못해 송곳으로 자기 허벅지살을 찌르거나 멀쩡한 살에 쑥뜸질을 놓아 일부러 종기를 만들어 앓아 눕기를 자초하는 거지. 웬줄 아시오 한선생? 여자들의 성감대가 모두 허벅지에 모여있기 때문이오.” “여자들 성감대가 허벅지에 있다는 것은 한 때 풍미했던 속설에 불과해요. 조선시대 규방의 절도를 계몽하려고 조작한 속설이겠죠. 오히려 입에 있다면 모를까.” “씨팔…, 입은 또 어지간히 좋아하시네. 빤히 알면서 딴청피우지 마시오. 여자들이 걸핏하면, 남자 뱃구레 위에다 허벅지 올려놓기를 좋아하는 까닭이 나변에 있나? 입은 재잘거리라고 둔 게지 달리 소용될 게 뭐 있겠소.” “그만둡시다.

좋은 공기 탁하게 만들지 말고.” “이봐요, 한선생. 그게 음흉한 거지 고상한 거요? 올곧은 말 하거든 알아 듣기나 하시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듣지도 못했다가 나라꼴 요모양된 거 아니오?” “글쎄, 알았으니 그만 둡시다.”

“듣고보니 한선생의 말도 터무니 없는 낭설은 아니군…. 남자든 여자든 사람의 생식기가 원래 자리 잡았던 곳이 어딘 줄 아시오? 그게 마빡이었다는 것은 잘난 체하는 대학교수들도 잘 몰랐을 거요. 그런데 동자신 (瞳子神) 이 나서서 그걸 마빡에다 달아놓고 보니까, 모양새는 제법 그럴싸한데 세상의 온갖 연놈들이 모두가 서로 마주쳐다보며 시시덕거리고 군침을 삼켜서 풍기문란하기가 짝이 없더란 게요.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서 입으로 옮기게 되었지. 그런데 이번엔 코란 놈이 발끈하고 나서며, 밤낮으로 곰삭은 새우젓 냄새가 등천을 한다고 불평이 자자하더란 게요. 코란 놈의 등쌀에 견뎌날 재간이 없게 되자, 얼른 배꼽으로 옮겼지. 그런데 이번에는 하체란 놈이 나서서 그렇게 귀한 물건을 상체에만 둔다고 올려차기에 화염병을 던지며 못살게 굴더란 게요. 그거 일리있는 얘기 아닙니까? 그래서 견디다 못한 동자신이 궁리를 짜낸 끝에 공평하게 몸 중앙에 두게 된 것이오. 아니래도 입가에 털이 난 것은 옛날에 그게 있던 자리였기 때문이라고들 합디다.

옛날 절터를 보시오. 절은 무너져 간데없어도 잡초는 살아서 무성하지 않습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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