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새정부 빅딜 '빅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새해벽두부터 핫 이슈로 떠올랐던 '대기업간 사업교환 (빅딜)' 논란은 2일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의 "대기업 구조조정은 자발적으로 조용히 진행되기 바란다" 는 발언으로 일단락됐다.

이 과정의 전말은 집권당으로 새롭게 태어나려는 국민회의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는듯 해 씁쓸하다.

2일 국민회의 간부회의에서는 논란의 책임이 언론에 있는양 성토하는 분위기마저 있었다고 한다.

빅딜이 기업구조개혁의 모든 것인양 언론이 왜곡.과장했다는 것이다.

한 당직자는 "정말 억울하다" 고까지 했다.

과연 그런가.

지난달 21일 국민회의 간부회의가 끝난 뒤 김원길 (金元吉) 정책위의장은 기자실을 찾아와 "기업간 빅딜이 과감히 일어나야 한다" 고 강조했다.

다음날 金의장과 5대그룹 기조실장 회의후에는 빅딜 등 구조조정에 의견접근을 봤다는 발표도 나왔다. 이런 발언들이 기폭제가 돼 빅딜은 대기업 구조조정의 핵심으로 부각됐다.

아직 과거의 경험과 악몽,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업들은 새정권의 정경분리 의지 등을 실감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업들이 5공 (共) 식의 기업 강제통폐합, YS정권 초기의 현대그룹과의 갈등 등을 연상한 것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또 기업총수의 사재출자 요구는 새정부가 과연 시장경제원칙에 충실할 지에 의문을 던지게 했다.

이런 점에서 빅딜 논란은 국민회의나 당선자 주변에서 자초한 셈이다.

백번 양보해 "재벌 구조조정은 법과 시장경제 메커니즘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라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 는 새정권측의 설명을 인정한다 치자.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원인제공을 했기 때문이다.

당선자측 주변에서는 아직 '야당식 발언' 과 '여당으로서의 발언' 의 비중 차이를 실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특히 실세로 불리는 인사들의 발언은 곧바로 당선자의 의지로 비쳐지게 마련이다.

최소한 당선자와의 의견조율을 거친 것으로 인식되는 게 현실이다.

3일 金당선자가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과의 회동뒤 金대통령의 해양수산부 존치 희망을 정부조직개편심의위에 전달키로 한 대목도 같은 정책혼선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안에 대해 당선자 주변에서는 보다 신중한 접근과 발언을 해주길 당부한다.

김두우〈정치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