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나의 작은 문화유산 답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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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구름에 싸인 달을 너는 보았지/세상은 구름이요 홍도는 달빛/하늘이 믿으시는 네 사랑에는/구름을 걷어주는 바람이 분다' . '홍도야 우지마라' 의 2절이다.

홍도의 처지가 그렇듯, 살아내야 할 앞날을 막막하게 바라보는 홀로 된 아낙의 심정이 온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그러나 구름이 사라지면 거기 푸른 산이 보인다고 했다 (白雲斷處有靑山) .노래가 가르치듯 나부끼는 것은 구름이지 결코 달이 아니다.

그러므로 청산처럼, 달처럼 의연할 수 있다면 구름은 언젠가 사라지는 법이다.

지난 세월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이제는 모두 자신을 되돌아보자고 입모아 말한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한 방법으로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를 통해 우리 산하와 유산의 아름다움을 펼쳐냈듯이 '나 자신의 작은 문화유산 답사' 를 해보면 어떨까 싶다.

우리말을 만들어 즐겨 쓰는 백기완은 고향을 '옛살나비' 라고 이른다.

옛날에 나비와 더불어 살던 곳이란 뜻이다.

아련하다.

도시민이 그 먼 옛살나비를 찾기에는 일상이 너무 빡빡하다.

'나의 작은 문화유산 답사' 는 여기서 출발한다.

우선 자라고 배우고 거쳤던 곳을 이따금 찾아가는 일이다.

어릴 적 대도시로 흘러온 중년이라면 아마 손가락 숫자만큼 이 동네 저 동네를 전전했으리라. 그 옛동네. 그곳이 달동네였다면 지금은 재개발 아파트가 들어섰을 테고, 그 집이 그대로 있다면 퇴락했을망정 누군가 살고 있게 마련이다.

혹은 세태에 따라 다세대주택으로 바뀌었다면 어느 방에선 신혼의 꿈이 영글고 있을 것이다.

한용운이 갈파했듯 그 곳곳이 바로 고향인 것이다 (男兒到處是故鄕) . 다니던 초.중.고교 또는 대학교를 찾는 일도 마찬가지다.

남자라면 근무했던 부대를 자식의 손을 잡고 가보는 것도 좋다.

거기에도 나의 체취.흔적이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처럼 어른거릴 것이다.

우리는 소설가들의 후일담, 이른바 사소설 또는 성장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난 시절을 되새기며 때로는 깊게 공감한다.

잊지 못할 사람을 찾아주는 'TV는 사랑을 싣고' 가 방영 초기부터 지금까지 사랑을 받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찾아보는 것은 소설이나 TV프로에 견줄 바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진정한 성찰의 세계로 안내한다.

'작은 문화유산 답사' 의 두번째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직장 주변을 산책하는 것이다.

예컨대 필자가 즐겨 도는 코스중 하나가 스스로 이름 붙여 '손기정 코스' 다.

점심약속이 없는 날 구내식당을 빨리 이용한다 (IMF점심!) .그리고 직장이 있는 서소문에서 봉래시장.만리동 고개를 거쳐 손기정공원 (옛 양정고 자리) 을 둘러본 다음 만리동 재개발 예정지구를 통과해 회사로 돌아온다.

40분 남짓 걸리는 이 길에서 역사를 생각한다면 과장일까. 아니다.

고산자 (古山子) 김정호 (金正浩)가 만리동에 살았고 1백7년된 약현성당은 늘 고요하다.

나물 파는 아낙들은 언제나 분주하다.

손기정이 히틀러로부터 받은 미국산 참나무는 그의 모교 터에서 꿋꿋이 자라고 있다.

공원운동장 옆 노인정에 내걸린 '60세 이하 출입금지' 푯말은 우리를 웃음짓게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공차기에 여념이 없다.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저 아이들의 웃음이 이젠 내 것이 아니구나" 생각한다는 60년대 영국노래 'As tears go by' 는 이럴 때 부르라고 만들었나 하는 싱거운 생각도 든다.

보이는 것이 모두 눈물겨운 장관인 것이다.

감상 (感傷) 이 아니다.

산다는 걸 가끔은 이렇게도 바라보자는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정치란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 이라고 했는데 나는 도대체 누구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그리고 동전을 쓰며 발행연도를 슬쩍 보는 것도 '문화유산 답사' 에 들 수 있을까. 이 동전이 찍힌 칠십몇년, 팔십몇년에 나는 어디서 뭘하고 있었더라? 답답한 건 이 '답사' 조차 사치로 여겨질 고개숙인 사람들의 처지다.

이헌익〈대중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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