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돈정치 정리해고" 자가수술 착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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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치권이 자신들의 구조조정에 나섰다.

국민들로부터 돌이 날아들기 전 재계.노동계.행정부의 감량노력에 합류한다는 취지다.

출발은 순조로워 보인다.

시작부터 5.7지방선거를 한달쯤 뒤로 미루는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물론 지방선거 전 의원감축방안 등을 모색하자는 명분 뒤에는 "선거준비 시간을 좀더 갖자" 는 실리가 일치하고 있다.

여권은 오는 25일 이후 정부조직을 실질적으로 다듬어야 하고 조각 (組閣) , 차관급이하 후속 인사와 산하기관 통폐합 등 할 일이 태산같다.

한나라당 등 야권도 체제정비가 시급하다.

정치개혁의 핵심 사안에서도 여야의 현재까지 목소리는 상당부분 일치한다.

양쪽 모두 '돈 덜 드는 선거와 정치' 를 강조하고 있다.

국민회의가 가다듬고 있는 안 (案) 은 각종 선거에서 지방의원 감축, 지구당 폐지, 방송토론회 확대, 홍보물.현수막 축소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같은 구상은 신 여권 전체의 뜻이기도 하다.

지난달 30일 DJT회동에서 김대중 (金大中) 당선자가 고비용 정치구조의 청산을 주창하자 자민련 김종필 (金鍾泌) 명예총재와 박태준 (朴泰俊) 총재도 이구동성으로 공감했다.

이어 조세형 (趙世衡) - 김복동 (金復東) 라인이 지난달 31일과 1일 비공식 회동을 연이어 갖고 구체적 협의를 갖는 등 초스피드로 진행되고 있다.

한나라당도 이러한 취지와 방안에 찬성하고 있다.

사실 정치개혁 논의는 한나라당이 대변인 성명 등을 통해 먼저 꺼낸 주제다.

그러나 여야의 정치개혁 작업이 순항 (順航) 할 것으로 속단키는 어렵다.

'돈 덜 드는 선거와 정치' 란 총론에는 여야 모두 같은 목소리를 내지만 속내는 좀 복잡하다.

특히 선거구제 변경과 의원 정수 (定數) 축소가 그렇다.

차제에 입법부 구조개혁까지 해보자는 한나라당의 입장에는 몇가지 복선이 깔려 있다.

국회에서 정치협상을 벌이면 발언권은 거야 (巨野)에 더 많이 주어진다.

최소한 정국전반의 주도권이 신 여권에 확 쏠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여야 정치협상이 진행되는 중에는 신 여권의 야당 허물기 시도가 멈칫할 것이라는 점도 고려했음직하다.

그간의 헌정사에 비춰 선거구제 개편 논의가 필연적으로 내각제 등 개헌논의로 연결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국민회의와 자민련간의 결과적 갈등을 내심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신 여권이 이러한 위험부담을 알면서도 야권의 정치개혁 논의를 덥석 받고 한걸음 더 나아가 대선거구제까지 긍정 검토하겠다는 배경이 관심사다.

모든 정치현안에 대한 '원점 (原點) 논의' 를 보장해 정부조직법.경제구조조정법 등 개혁입법의 수월한 통과를 기대할 수 있고, 인사청문회 개최논란을 잠재우는 것 등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정치권 구조조정을 통해 과거의 '돈정치' 에 익숙한 일부 구정치인의 세력기반이 약화되는 것도 내다보고 있는 눈치다.

선거구제도 변경할 수 있다는 말은 정치권 대변화를 기대한 정면 돌파수로 해석된다.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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