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일본·한국의 뇌물성 향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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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본 대장성 (大藏省) 의 고위 간부 2명이 은행으로부터 뇌물성 향응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대장성 장.차관의 사임이 확정된 것은 두 가지 점에서 충격을 준다.

하나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일본 최고의 엘리트 집단인 대장성도 검찰의 사정 (司正) 칼날은 피할 수 없었다는 점, 또 하나는 금품수수가 아닌 골프와 요정 접대만으로도 고위 간부가 구속됐다는 점이다.

특히 대장성 간부에 대한 장기간 향응 접대의 비밀을 아는 직원이 검찰의 소환을 받고 자살함으로써 이번 사건은 표면상으론 더 이상 확대되지 않을지 몰라도 일본의 관직 부패와 대장성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 커질 것이다.

일부 관측통들은 하시모토 내각의 단명도 예언하고 있다.

일본 대장성은 재정.금융.조세에 관한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현재 위상을 낮추는 작업이 진행중인 한국의 재경원 (財經院) 이상으로 권력이 집중돼 있고 금융기관의 사활 (死活) 을 좌우할 수 있는 규제가 몰린 곳이다.

비대화한 대장성의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소리는 일본 정부개혁이 있을 때마다 거론됐으나 그때마다 유야무야 끝나고 말아 '과연 대장성이야' 하는 감탄을 듣기도 했다.

따라서 골프접대나 요정 향응 등은 아무리 공무원윤리법이 엄존해도 일종의 용인될 수 있는 범주로 여겨지던 대장성의 해묵은 치부 (恥部)가 검찰의 수술의 칼을 받았다는데서 일본 내외에 주는 교훈은 크다.

아울러 공룡 대장성을 공격한 일본 검찰의 용기는 관기 (官紀) 숙정이나 부패척결에 임하는 세계 각국 검찰의 모범이 되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아직도 일본과 비슷한, 아니 오히려 더 지독한 향응 접대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한국으로선 정말 타산지석 (他山之石) 으로 삼을 일이다.

그래서 이번 일본 대장성사건을 계기로 우리도 선물.접대.사례 등의 범주에서 맴도는 공직자에 대한 향응이 과연 어디까지 정당한 것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천문학적 규모의 떡값이 곧이곧대로 말하는 떡값으로 해석되고 촌지나 급행료 등이 아주 너그럽게 용인되는 사회에선 정도를 넘는 향응도 부정부패가 아닌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

그 증거로 한국기업들이 쓴 접대비는 벌써 95년에 2조5천억원에 이르렀다.

대부분 공직자에게 뿌려진 이 접대비의 규모는 그 해의 농어촌 저리 융자금 규모와 맞먹는다고 해서 화제가 됐었다.

공직자의 회식 및 접대, 경.조사에 따른 부조 등에 일정한 제한을 가하는 공직자윤리법개정안이 좀처럼 법제화되지 않는 배경을 심사숙고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일본 대장성사건이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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