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일본판 '북풍'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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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기쁜 '긴급 뉴스'입니다. 소가 히토미(납치 피해자) 일가의 상봉이 9일로 결정됐다고 합니다. 우리들도 이에 힘입어 오는 11일의 참의원 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합시다."

5일 오후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참의원 선거 도쿄지역 후보자 대회. 사회자의 긴급 발언에 좌중이 술렁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집권여당인 자민당이 제1야당인 민주당에 참패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는 비상상황에서 소가의 가족상봉 소식은 귀가 번쩍 뜨일 대형 호재다. 대회식장 정면에 앉은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관방장관도 만면에 득의만만한 미소를 머금었다. 나흘 앞으로 다가온 일본 참의원 선거전에 등장한 '북풍'변수에 일본 정치권이 소란스럽다.

일본 정부가 5일 "북한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살던 납치 피해자 소가 히토미가 선거 이틀 전인 9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남편 젠킨스.두딸과 상봉하게 됐다"고 전격 발표했기 때문이다. 야당은 당장 '참의원 선거용'이라며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소가의 가족 상봉은 이미 지난 5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의 방북 이후 꾸준히 추진해 온 사안이다. 따라서 사안 자체는 놀랄 일이 아니지만 문제는 상봉 날짜가 당초 예상보다 상당히 앞당겨졌다는 것이다. 자민당이 이대로 선거에서 참패해 고이즈미 총리가 퇴진할 경우 어렵게 '수교 협상 재개'직전까지 끌고 온 양국 간 관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를 우려한 북한이 발 빠르게 '고이즈미 구원카드'를 던졌다는 게 일본 언론들의 분석이다.

실제 호소다 장관은 5일 기자회견에서 "전적으로 북한의 협력이 컸다"며 사의까지 표명했다. 이에 따른 각종 이벤트 준비도 재빠르게 진행 중이다. 소가가 하루 앞선 8일 자카르타에 도착, 9일 전세기 편으로 도착하는 가족들과 공항에서 눈물의 재회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모든 방송사가 생방송한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자민당이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기폭제"란 낙관론이 있는 반면 "너무나도 속이 뻔해 오히려 자민당에 마이너스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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