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위기'아니라는 경제, 왜 더 침체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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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곧 나아질 것이라던 정부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우리 경제는 갈수록 깊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내수부진이 장기화하면서 비교적 경기를 덜 타는 법무.회계 등 전문.고소득 직종마저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15% 늘어날 것이라던 올 자동차 내수판매는 9% 감소로 수정 전망됐다. 내수침체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얘기다.

우리 경제의 우울한 현주소를 보여주는 징후들이 줄을 잇고 있다. 도심에는 빈 사무실이 늘고, 장사가 안돼 문닫는 시장 점포와 공장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백화점에 이어 부자들이 찾는 명품마저 매출이 급락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돈 가뭄으로 허덕이고, 대기업의 체감 경기도 추락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물가는 치솟으면서 서민의 고통을 더하고 있다. 모두가 "죽겠다"는 소리뿐이고, 사회가 온통 불안하고 뒤숭숭하다.

이런 서민의 고통과 기업의 불안감을 정부는 알고 있는가.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에 대한 우려'를 '음모론'으로 질타한 이후 경제관료나 기업인 사이에서 '위기'란 말이 쑥 들어갔다. 속으로는 끙끙 앓으면서도 겉으로는 말도 못 꺼낸다.

위기를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 하여 위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 대책 없이 이렇게 둥둥 떠내려 가는 것이 바로 위기라는 증거다. 현 정부는 출범 1년반이 되도록 국민에게 믿음을 못 주고 있다. 말로는 경제를 챙긴다고 하면서도 실제는 분배다, 수도 이전이다 하며 국론을 분열시키는 상황만 만들고 있다. 그로 인한 불안감이 바로 위기의 요인이며, 그 결과가 경기침체로 나타나는 것이다.

연말로 가면 최후의 보루인 수출마저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은 더 늦기 전에 왜 국민이 불안해 하는지, 왜 기업과 소비자가 돈을 안 쓰는지 그 배경을 정교하게 재점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단기 부양책을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다. 기업과 소비자,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비전과 청사진을 제시하고, 이를 행동으로 보여주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