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금융권 IMF 명암…은행·종금사 '쑥대밭' 손해보험업계'느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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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손해보험업계가 요즘 '표정관리' 를 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로 금융권 전체가 쑥대밭이 되다시피했지만 손보사들은 별 충격없이 순항중이기 때문이다.

손보업계가 잘했다기보다 재앙이 손보업계를 피해간 덕 (손보업회 양두석 차장) 이라는 고백이지만, 어쨌든 여유만만이다.

만년 적자로 허덕이던 2~3년 전과는 완전 딴판이다.

비결은 무엇인가.

우선 손보사들은 기업 부실여신에 관한한 무풍지대다.

전체 대출자산중 기업에 꿔준 돈이 얼마 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말 기준으로 손보업계의 기업대출 비중은 대기업 10.3%, 중소기업 14.3% 등 총 24.3%에 불과하다.

기업대출 비중이 70%선에 달하는 은행이나 1백%에 육박하는 종금사와는 기업 도산에 따른 충격이 훨씬 덜할 수밖에 없다.

대출을 하더라도 일단 다른 금융기관에 예금을 하고 해당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대출을 하게 하는 '브리지론' 방식을 애호했다.

위험부담이 그만큼 작았다.

또 최근 생보사들은 신종적립신탁 등 다른 금융기관의 단기고금리 상품으로 급속히 뭉칫돈이 빠져나가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손보사들은 상대적으로 걱정이 덜하다.

손보업 성격상 일정기간후 이자를 쳐서 돌려주는 저축성 보험상품보다 보험료가 소멸되는 보장성 보험상품을 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96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손보업계의 상품 구성비 (원수보험료 기준) 는 3대7 비율로 보장성 보험이 많다.

저축성 보험상품을 주로 판매한 생보사들이 최근 보험해약에 따른 환급금을 마련하기 위해 매각손을 감수하고 보유 주식.채권을 팔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부 대기업 계열의 손보사를 제외하고는 해외영업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환율변동에 따른 손해도 거의 없다.

국제결제은행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은행.종금사의 존폐를 좌우하는 기준이 되고 있지만 보험사들은 자기자본비율을 맞춰야 하는 부담도 없다.

거기에다 2~3년전까지 손보사에 3조원대의 누적적자를 안겨줬던 자동차보험이 최근들어 효자상품으로 바뀌고 있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4~8월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에서 지급한 보험금을 뺀 차액은 1천6백76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4백33%나 늘어났다.

보험료 인상과 함께 교통사고가 줄어든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대호황은 어렵겠지만 기존 보유계약이 유지되고 있는 한 이익이 전년보다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 (현대해상화재보험 송영빈 실장) 이다.

손보업계가 이처럼 잘나가고 있는 까닭은 다른 업종에 비해 심사기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가장 낙후됐다는 평가를 들어왔다.

宋실장은 "남들보다 더 몰랐기 때문에 더 안전하고 보수적으로 영업을 해왔다" 고 설명했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간다는 원칙을 중요시한 손보사들의 영업방식이 IMF라는 난세를 버텨나가기에 적당한 체질을 만들어준 셈이다.

홍승일·박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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