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 항암치료, 까다롭지만 불가능하진 않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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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호 15면

SBS-TV의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막장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 연속극은 종영을 앞두고는 내내 악녀로 행동했던 신애리(김서형 분)가 임신한 상태에서 말기 위암 사실을 발견하며 태도가 급변, 또 한번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백혈병 같은 진부하고 고전적인 불치병의 공식에서 벗어나 임신과 암의 조합이라는 매우 극단적 상황을 생각해 낸 드라마 작가의 의학 지식에 놀라울 뿐이다.

원장원의 알기 쉬운 의학 이야기

임신 중에 암이 발견될 확률은 1000명 중 한 명꼴에 불과하다. 특히 위암은 50대 이후에 많이 발생하며 20, 30대에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신 위암이 이렇게 젊은 나이에 발병하면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극 중 신애리처럼 젊은 나이에 위암에 걸린 사실을 모른 채 임신했다면 훨씬 더 예후가 좋지 않게 된다.

임신 중에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위장운동이 감소한다. 또 커진 자궁이 위장을 자극하기 때문에 오심이나 구토가 매우 흔하며, 소화불량이나 식욕부진도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위암의 증상과 비슷하기 때문에 임신 중에 위암 진단이 늦어지는 원인이 된다.

그런데 임신 중에 생리적으로 발생하는 오심이나 구토는 임신 4개월 이후에는 크게 감소하고 임신 5개월 이후에는 거의 대부분 사라진다. 따라서 이 시기 이후에도 오심이나 구토가 있으면서 체중 감소가 있다면 위내시경 검사를 고려해야 한다. 임신 3개월 이내는 태아의 장기들이 형성되는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내시경 검사를 받지 않는 것이 좋지만, 그 이후엔 비교적 안전하게 내시경검사를 받을 수 있다. 대신 수면내시경 검사는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수면제를 소량만 사용해야 한다. 지나치게 수면 상태가 깊어지면 혈압이 떨어지고 저산소증이 생겨 태아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방암도 임신 중에 진단이 흔히 늦어지는 암이다. 임신 중에는 유방이 커지고 정상적인 멍울이 잘 만져지기 때문에 유방의 종양을 잘 만지지 못하거나 만져져도 진짜 종양과 잘 구별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임신 중에 나타나는 면역학적 변화는 암의 진행을 조장할 수 있다. 즉, 태아를 거부하지 않도록 산모의 면역기능이 변화하기 때문에 암이 발생해도 이를 거부하거나 공격하지 않는 면역학적 내성이 생기며, 그 결과 암의 진행이 빠를 수 있다. 대체로 임신 중에 발견된 위암은 90% 이상이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되며 50% 이상이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임신 중 항암치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임신 3개월 이내인 경우 항암치료는 유산이나 태아 기형 등을 유발할 수 있어 피해야 하지만 임신 4개월 이후로는 전문의와 상의해 대체로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다.

임신부에 적합한 암의 진단과 치료법을 선정하는 것은 산모와 태아 모두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퍽이나 까다롭다. 임신 중에도 안전한 영상 검사로는 단순흉부촬영, 초음파검사, 유방촬영, 자기공명영상촬영(MRI) 검사 등이 있다. 그러나 방사성동위원소촬영, 양전자단층촬영(PET), 복부 CT 검사는 임신 중에는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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