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한민국 정당정치의 참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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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재·보선 결과 무소속이 국회의석 3곳을 차지했다. 한나라당은 완패했고, 민주당은 1석을 건졌다. 기성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이 확인됐다. 정당정치의 참패다. 선거 결과만 아니라 공천에서부터 선거운동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양대 정당의 패배는 공천 과정에서부터 예고됐다. 당선된 무소속은 진짜 무소속이 아니다. 모두 양당의 내분으로 태어난 기형적인 후보였다. 민주당의 경우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당의 결정에 불복해 무소속 출마했다. 신건 후보의 경우 아예 민주당 공천 신청도 하지 않고 출마했는데, 선거 과정에서 민주당 사람임을 앞세워 당선됐다. 제1 야당의 공천 과정이 완전히 무시된 셈이다. 울산 북에 출마했던 민주당 후보는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이 후보단일화를 이루자 자진 사퇴하기도 했다. 공당 후보로서 무책임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 경주 공천 역시 당내 갈등으로 일찌감치 일그러졌다. 한나라당 주류인 친이계는 지난 선거에서 탈락한 정종복 후보를 다시 공천했고, 무소속 정수성 후보는 한나라당 비주류인 친박계 대표임을 내세워 당선됐다. 그 와중에 박근혜 전 대표는 경주는 물론 다른 지역 선거운동에도 전혀 나서지 않았다.

당내 사정을 떠나 크게 보자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은 ‘제대로 된 정당 기능을 못 했다’는 비판이기도 하다. 정당의 본래 기능은 다양한 여론을 수렴하고 통합해 제도와 정책으로 구현해 내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양대 정당은 유권자들로부터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리란 믿음을 얻지 못했다. 정당이 신뢰를 잃지 않았다면 당론을 무시하고 출마한 무소속이 한꺼번에 당선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바람직하지 못한 양태로 시종한 이번 선거는 앞으로 양당의 내부 갈등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정당정치의 발전을 저해하는 악영향을 남길 것으로 우려된다. 민주당은 벌써 정동영·신건 당선자의 복당 문제로 시끄럽다. 한나라당 역시 선거 패배 책임론이 이어질 것이다. 양대 정당은 정치불신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당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화합의 정치, 공천잡음을 방지할 상향공천 등 당내 민주화, 당의 정체성을 보여줄 정강정책의 개발 등 과제는 산적해 있다. 정당 역시 자기혁신만이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