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까지 내준 박희태 한숨 내쉬고 … 수도권 건진 정세균은 한숨 돌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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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민주당 정세균 대표 두 사람은 두 종류의 전선에서 싸웠다. 한 전선에선 둘이 맞섰다. 한 사람이 이기면 다른 사람은 지는 제로섬 싸움을 했다. 인천 부평을이었다. 각자에겐 또 다른 전선이 있었다. 정치적으론 더 중요할 수 있는 싸움이었다. 경주와 전주 완산갑이었다.

박 대표는 두 곳 모두에서 힘든 싸움을 했다. 그 역시 ‘여당의 무덤’이란 재·보선의 문턱을 넘지 못할 처지가 됐다. 29일 오전에만 해도 기대감이 있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공천 잘못했다는 얘기 없더라”며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9시 개표가 시작될 무렵만 해도 “경주는 걱정 안 하는데, 경주만 이긴다면 부평에서 져도 우리로선 큰 타격이 아니라고 보는데…”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개표가 진행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경주에서조차 정종복 후보가 힘겨운 싸움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당초 오후 10시20분쯤 기자들과 만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정을 취소하고 대변인 논평으로 대체했다. 당 주변에선 “역시 여당은 안 되는구나.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는 한탄이 이어졌다.

박 대표의 앞엔 험난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재·보선 결과를 두고 책임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박 대표로선 할 만큼 했다”는 얘기보단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친이-친박 간 갈등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점도 문제다. 박근혜 전 대표의 이번 부재를 두고 양 진영 간 감정의 골이 파일 대로 파였다. 그가 어렵사리 눌러 왔던 갈등이 노골화될 수 있다.

정세균 대표의 처지는 박 대표보단 낫다. 부평을과 시흥시장 보선에서 선전했기 때문이다. 개표가 진행될수록 그의 표정은 밝아졌다.

그의 체제는 당분간 안정감을 회복할 수 있게 됐다. 수도권 승리로 지도부가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정동영 전 장관 공천 배제로 폭발했던 당내 비판세력들의 목소리가 잦아들게 됐기 때문이다. “수도권 선거에 악영향을 준다”는 게 정 대표가 내걸었던 공천 배제의 명분이었다.

그러나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안정감이다. 그는 정동영 후보에 맞서기 위해 여러 거물들을 불러냈다. DJ(김대중)는 물론 손학규·김근태 고문 등이다. 그러고도 정동영 후보에게 전주를 내주었다. 완산갑에서도 졌다. 겉보기론 그가 이겼지만 그가 이기지 못한 이유다. 그는 정동영 의원이란 보이는 적뿐만 아니라 언제든 그를 대체할 수 있는 거물들의 복귀를 도운 셈이 됐다.

고정애·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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