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녹색뉴딜, 후대 평가 위해 영상기록 남기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5면

의궤(儀軌)는 조선 왕실에서 이뤄진 중요한 의례 행사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을 기록한 일종의 기록물이다. 후대에 발생할 수 있는 동일한 사안에 대한 전범(典範)으로 활용한 세계 최고의 기록문화 유산이다. 이 의궤가 세계적으로 평가 받는 까닭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기 때문이 아니다. 기록학적으로 증거적 가치와 활용적 가치를 완벽하게 함께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의궤는 국가 행사의 진행 상황을 정확하고 낱낱이 기록했다. 후손들에게 행사의 절차와 결과를 보여주는 증거로서의 의미를 지녔다. 의궤를 통해 기록을 남긴 이유는 여러 가지다. 엄중한 역사인식과 책임 속에서 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최선을 다해 후대의 평가를 제대로 받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또한 후대에 비슷한 사업을 수립하거나 집행할 때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자는 활용적 가치도 지녔다. 중요한 국가사업을 기록하는 것은 이와 같은 가치를 확보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한국은 글로벌 경제위기 탓에 원치 않는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다. 정부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대규모 사업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사업들에 대해 정치적 또는 경제적으로 해석이 분분하다. 그 효과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다만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국토의 모습과 국민의 생활이 사업 전후로 엄청난 차이가 생길 것이라는 점이다. 성형수술 광고의 ‘비포 앤 애프터’만큼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시행하는 굵직한 사업들에 대한 전 과정은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국토의 엄청난 물리적 변화가 확연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기록학적으로 ‘녹색 뉴딜’과 같은 국토 개조 사업에서 생산되는 문서나 설계도 등 기록물도 중요하지만, 실제 변화돼 가는 모든 과정을 촬영한 영상기록물도 필수적이다. 만약 21세기의 국토 개조에 영상기록이 남겨지지 않는다면 당대는 물론 후대들도 국토 변화의 전말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영상기록을 통해 녹색 뉴딜 사업이 정부에서 판단한 대로, 위기를 기회로 만든 최선 또는 차선의 방도였는지, 혹은 이를 반대하는 편에서 주장하듯이 단순한 토목사업에 불과한 것이었는지 후대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후손들은 이 기록을 통해 배울 점을 배우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시행착오를 줄여야 한다. 그게 제대로 된 나라이며, 그래야 나라가 발전한다.

기록은 사실의 기술(記述)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편견이나 왜곡도 없고, 존재하는 그대로를 담아야 한다. 녹색 뉴딜 사업에 따른 국토 변화의 모든 과정을 영상기록화하는 것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작금의 노력이 모두 옳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기록은 틀린 선택을 할 수도 있음을 전제로 한다. 지금 우리가 논의하고 수행한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기록해 후대에게 우리 선택의 자랑스러움과 당당함을 보여줘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역사 앞에 떳떳할 수 있다. 우리 국민과 후손이 영상기록물을 통해 녹색 뉴딜 사업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다면, 배가 산으로 가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후대에 지금의 우리를 자랑스러운 선조로 비춰줄 수 있는 또 하나의 기록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국가사업의 기록은 특정인과 특정 정당을 위한 홍보나 선전 전략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와 후손에 대한 국가의 또 다른 의무일 뿐이다. 앞으로 수년간 수십조원이 들어갈 국토 개조 사업에 그 천분의 일, 만분의 일에 해당하는 기록 예산을 마련하지 못하는 것은 선조로서 우리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다.

남영준 중앙대 교수·문헌정보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