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재경원장관 수입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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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재정경제원 장관을 수입하세요 - .” 월가의 몇몇 코리아 데스크 (한국투자 담당자)에게 한국이 경제위기에서 빨리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면 종종 이런 답변을 한다.

물론 답답한 나머지 해보는 푸념이지 진짜 외국인 장관을 영입하란 얘기는 아니다.

월가의 주요 은행.증권사에서 일하는 코리아 데스크들은 대부분 명문대학 경영대학원 출신의 한국인 1.5세들이다.

이들은 모국에 대한 자긍심을 거론하기에 앞서 직장에서의 입신 출세를 위해서라도 한국경제가 잘 돼 나가기를 염원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재경원 장관 수입론' 과 같은 치욕적인 (?) 말을 입에 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이 현재의 위기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보다 더 개방적이고 대외지향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개혁정책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려면 ▶기존 이해관계에 얽매여서는 안되며▶국제 금융계 거물들과의 커넥션이 절실히 요구되고▶사업가적 기질과 수완을 갖춘 해당업무에 정통한 사람이어야 하며▶재경원에 대한 구조조정이 무엇보다 시급한데, 과연 그런 '국제경쟁력 있는' 재목이 한국에 있느냐는 것이다.

월가에 있는 S투자회사의 코리아 펀드 책임자 J (41) 씨는 “한국의 재무관리들이 홍보.설득을 한답시고 다녀가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고 말한다.

이번 경제위기 초기에 재경원의 한 관리가 대한 (對韓) 투자를 당부하기 위해 자사 최고 경영진을 만났는데, 그는 우선 코리아 펀드가 뭔지부터 설명해달라고 말하더라는 것. 최고 경영진은 면담이 끝난 직후 자신을 불러 남은 한국물을 모조리 처분하도록 지시하더라고 말했다.

사전준비도 없이 면담하자고 찾아오는 한국 관리를 보니 앞날이 뻔하다는 것이다.

B투자은행의 K (45) 씨는 자기네 회사 사장이 과거 한국을 방문, 재경원 고위 간부에게 면담을 요청했을 때 '일개 업자가 감히…' 하는 반응과 함께 거절당했던 얘기를 지금까지도 한다고 했다.

이들은 한국경제의 위기는 한국정부, 특히 재무관료들에 대한 국제 금융계의 불신감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신뢰감을 회복하려면 '믿을 수 있는' 외국인을 재무정책의 총책임자로 임명하는 게 효과적이 아니냐는 웃지 못할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김동균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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