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살뜰 안방 구조조정]4.달라지는 아이들…"아빠 힘드신데" 용돈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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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일산 저동초등학교에 다니는 정현기 (11).윤경 (8) 남매는 얼마전 매주 3천원.2천원씩 정액으로 받던 용돈을 거부 (?) 하고 나섰다.

IMF한파로 아버지 월급은 동결된 반면 온갖 생필품 값은 껑충 뛰어 생활비 부담이 만만치않다는 얘기를 부모로부터 전해들은 뒤의 결정이었다.

대신 스스로 집안일을 도울 때마다 얼마씩 돈을 받아 용돈으로 충당키로 했다.

아무리 집안일을 많이 돕더라도 용돈의 총액은 예전의 3분의2선을 넘지않는다는 단서와 함께. "저희가 일한 대가로 받는 돈을 쓴다면 훨씬 아껴쓰게 될 것 같아요. 부모님이 애쓰시는데 저희도 작은 일이나마 도와드려야죠. " 현기.윤경이는 요즘 아버지 구두를 한번 닦을 때마다 3백원, 이불을 개켜 넣을 땐 1백50원씩을 받아 둘이서 똑같이 나눠 가진다.

모든 씀씀이를 줄이자는 IMF 시대, 갖가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녀들은 가장 큰 혼란과 갈등을 느끼는 장본인들이다.

소득에 관계없이 아이들 뒷바라지를 최우선시해 왔던 게 우리네 가정의 현실. 그런데 느닷없이 살림이 어렵다며 '용돈을 줄이겠다' '학원을 그만 다녀라' 등등 쏟아지는 주문은 아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뿐더러 좌절감을 맛보게 할 수 있다.

다행히 초등학생 정도면 학교나 신문.방송을 통해 어느 정도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한 감을 잡고 있다.

따라서 부모들이 현명하게 지도만 한다면 오히려 아이들의 방만한 소비행태며 생활습관을 바로잡는 계기도 될 수 있다.

어린이경영학교의 강영만 소장은 "아이들에게 집안 형편을 차분히 설명해주고 자발적인 도움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조언한다.

형편이 어려우면서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큰 소리를 치거나 무조건 어렵다고 하는 건 좋지않다.

이런저런 이유로 수입이 이만큼 줄었으니 살림규모도 이만큼 줄여야한다고 설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 또한 아이들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할 때는 부모들이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여야 설득력을 발휘한다.

"아빠도 한 달 용돈을 3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줄였는데 너희는 어떤 걸 줄일 수 있겠니?" 라고 묻고 아이들 스스로 절약방법을 찾아보도록 도와주라는 얘기다.

주부 박진선씨 (39.서울마포구합정동) 는 얼마전부터 식탁 벽에 게시판을 걸어두었다.

이 게시판은 1주일 치 가계부. 식구 4명의 칸이 마련돼있어서 각자가 매일 얼마를 어디에 쓰는지 기록하게 돼 있다.

이 방법은 중2.중1 두 아들이 제안한 것. 가족 각자가 따로따로 씀씀이를 적는 것보다 한군데에 몰아서 기입한 뒤 일요일마다 가족회의를 하면서 반성해보자는 취지였다.

"평소엔 몰랐었는데 군것질하는데 돈을 많이 쓰더라고요. " 내키는 대로 사먹지 말고 되도록 집에 와서 먹는 습관을 들이기로 했다는 게 첫주 회의를 마친 이 집 아들들의 결의사항. 요즘 유행 중인 '아.나.바.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 운동' 의 의미도 아이들에게 되새겨줄 필요가 있다.

독일서 살다 귀국한 주부 유지숙씨 (40.서울서대문구홍제동) 는 "우리나라 아이들처럼 새 옷, 새 장난감 타령하는 애들도 드물 것" 이라면서 유럽 가정에선 이런 물품들은 남이 쓰던 것을 싼 값에 사거나 바꿔 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전한다.

독일의 경우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기만 하면 각종 플로마르크트 (벼룩시장)에 안 쓰는 물건들을 들고 가 1마르크씩에 팔고 그 돈을 모아 원하는 물건을 사는 습관을 들이게 된다고. 한편 주부들이 부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IMF시대는 자녀들에게도 '홀로 서기' 를 요구하고 있다.

이원영 교수 (중앙대.유아교육) 는 "24시간 돌봐주던 엄마의 급작스런 부재는 아이들에게 고통이 된다" 면서 "엄마가 일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되, '엄마가 비록 곁에 없어도 엄마의 우선순위는 바로 너' 라고 무한한 사랑과 관심을 확인시켜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고 조언한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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