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매니저]파산위기 홍콩 페레그린 토즈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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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미.유럽계 대형 증권사들의 틈새에서 10년도 안되는 기간에 홍콩 제일의 투자은행으로 성장한 페레그린의 신화가 무너지고 있다.

지난 9일 홍콩 당국으로부터 영업제한 조치를 당해 파산위기에 몰린 페레그린 그룹의 필립 토즈 회장 (52) 은 한때 홍콩 증권업계에서 전설적 존재로 손꼽혔다.

영국 출신인 토즈 회장은 72년 영국의 비커스 다 코스타 증권사의 직원으로 홍콩에 첫 발을 디딘 이후 26년동안 홍콩에 살면서 중국계 실업가들과 돈독한 교분을 쌓아왔다.

그는 증권분석가로서 당시 청년 실업가였던 리카싱 (李嘉誠) 의 쳉쿵 (長江) 실업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쓰면서 李와 긴밀한 친분을 나눴다.

그는 이같은 배경을 바탕으로 홍콩증권계에 탄탄한 발판을 구축한 뒤 지난 88년 드디어 증권회사를 설립했다.

미 시티코프 계열의 홍콩 증권사에서 몸담고 있던 토즈는 중국계 금융전문가인 량보타오 (梁伯韜) 와 함께 회사를 나와 페레그린 증권사를 차렸다.

이 증권사는 창립 5년만에 홍콩내 주식발행 업무의 6분의1을 차지할 만큼 고성장을 이룩했다.

지난 96년 IFR증권 데이터사에 의해 주식발행 분야에서 아시아지역의 최우수 증권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시아 금융위기는 페레그린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지난해 10월 홍콩 증시의 주가 폭락때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페레그린의 주가는 떨어지기 시작했다.

또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의 택시업체인 PT스테디세이프사에 제공한 2억6천5백만달러의 자금이 루피아화 가치의 폭락으로 사실상 휴지조각이 됐다는 사실이 최근 알려지면서 주가는 걷잡을 수 없이 곤두박질쳤다.

급기야 지난 9일 페레그린의 지분 24%를 2억달러에 인수할 예정이었던 스위스의 취리히 그룹이 지분참여 계획을 철회, 페레그린에 치명타를 가했다.

페레그린측은 현재 몇몇 투자가들과 인수협상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4억달러에 이르는 빚 때문에 이마저 쉽지 않은 실정이다.

평소 토즈는 영국인답지 않게 중국인들의 상인정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방만한 투자와 위험관리 소홀이라는 아시아 금융의 특성까지 흉내내다 그가 이번 위기를 맞게 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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