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10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제1장 슬픈 아침 ⑩

어판장 한켠에서 공중전화 부스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심하게 훼손된 주입구에 천천히 동전을 집어넣었다.

다행스럽게도 강성민 (姜晟旼) 은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아직도 깊은 수면 속에 곯아떨어져 있던 그는 새벽에 전화를 걸고 있는 장본인이 누구라는 것을 냉큼 알아채지 못했다.

몇 번인가 누구냐고 되물은 다음에야,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확연히 집혀올 정도로 놀라고 있었다.

공중전화로선 길었던 통화를 끝내고 돌아섰을 때, 다시 박봉환과 마주치고 말았다.

통화 내용을 엿들었을텐데도 그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형님, 아침식사하러 가입시더. 단골집이 있심더. " "아침식사? 한계령에서 먹은 건 아침식사 아니었나?" "내가 사지요. 거기서는 형님이 식대를 냈는데, 내가 얻어만 먹을 수는 없지요. 형님은 시방 노자가 간들간들하지 않습니껴. " 두 사람은 시끌벅적한 어판장을 뒤로하고 나섰다.

갯내음이 배어 있는 스산한 바닷바람이 옷깃 속으로 파고들면서 추워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시장통으로 뚫린 좁고 긴 골목길을 빠져 나와 슬레이트로 지붕을 얹은 우중충한 외관의 식당과 마주쳤다.

나무와 나무끼리 칙칙 그어지는 소리를 내며 가까스로 열리는 미닫이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비릿한 생선냄새가 코를 찌르는 식당 안에는 낡은 석유난로가 타고 있었다.

배를 따서 말리는 동태 한 켜가 벽에 매달려 있었다.

내장에서 흘러내린 생선피가 벽을 적시고 있었다.

방문이 열리고 해사한 얼굴의 삼십대 초반의 여자가 곧장 술청으로 내려섰다.

그녀는 힐끗 한철규를 일별한 뒤 박봉환에게는 눈으로 수인사를 나누었다.

무엇을 주문하겠느냐고 묻지도 않는 것으로 보아, 박봉환의 말대로 단골식당임에 틀림없었다.

그녀가 묻지도 않았는데, 박봉환은 오늘은 물때가 좋지 않았다고 너스레를 늘어 놓았다.

그녀는 웃기만 할 뿐 이렇다할 대꾸는 없었다.

그녀가 찌갯거리를 도마질하기 시작할 무렵, 박봉환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여기서 며칠이나 지체하실지는 모르겠습니더만, 여관 찾아갈 것 없이 이 집에서 묵으이소. 형님 식사는 바가지 안씌우고 실비로 제공해 드릴 낍니더. 정말 서울로 돌아갈 의향은 없어 보이네요. " "아까 통화한 사람이 내 후배예요. 며칠은 여기서 쉬면서 생각을 좀 해봐야 겠어요. " "생각할 여유라도 있으이 다행입니더. 어쨌든 저 사람한테 신신당부해 놓을테니, 찜찜하게 생각말고 묵으이소. 그리고 지금부터는 날보고 구차스럽게 존대말 쓸 거 없심더. 옷소매만 스쳐도 인연이라 카는데, 형님하고 나하고는 하룻밤을 같이 지낸 사이가 아입니껴. 서울서 여기까지 같이 오면서 뭔지 모르게 고민이 많은 분이란 걸 눈치로 알아 묵었습니더. 뭔가 도와드리고 싶어서 말한거니까 성가시게 생각하지 마시소. " 우연이란, 인간이 추측할 수 없도록 감춰둔 신의 섭리란 말이 떠올랐다.

기복과 부침이 다채로워 부박한 삶을 살아가는 낯선 사내를 길 위에서 만나 이 시각에 이르기까지 함께 겪은 짧디 짧았던 고락도 공허하지 않았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투명한 햇살이 때묻고 찌든 창문을 비추고 있었다.

여자는 김이 솟아 오르는 두 그릇의 국밥을 식탁에다 내려 놓았다.

박봉환은 그녀에게 말했다.

"이봐라. 내가 형님한테 드린 말씀 다 들었제? 내가 모레 새벽에는 또 온다.

그동안 형님 식사대접은 물론이고 사소한 것까지 아금받게 챙겨 드리거래이. 미친년 무꾸 썰 듯이 대충대충 변덕을 부렸다카면, 내한테 혼난데이. 알아 묵겠나?" 조리대로 돌아서 있던 여자는 얼굴을 돌려 살짝 웃음만 흘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