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모델 너무 자주 바꾼다…같은 기능에 모양만 '살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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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LG전자는 지난해 31개의 TV 신제품 모델을 내놓았다.

그중 29인치 모델만도 10가지나 된다.

지난해 3월에는 29인치짜리를 한달에 3가지나 출시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30인치 TV 신제품을 5가지나 선보였다.

29인치 모델도 서너개를 더 내놓아 현재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29인치 모델은 10여가지나 된다.

VCR나 세탁기.냉장고.캠코더.오디오.컴퓨터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거의 한달 걸러 하나씩 새 모델이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기능이 엄청나게 달라진 것도 아니다.

크게 중요하지도 않는 기능 한두가지를 보완하거나 모양만 조금 바꾼 것도 있다.

이러다보니 품목이 늘어나 삼성.LG.대우.아남등 주요 가전사의 경우 TV 모델만도 1백가지를 웃돌 정도다.

상품 모델이 너무 자주 바뀐다.

가전제품뿐 아니라 유행을 잘 탈 것 같지 않은 가구도 비슷한 형편이다.

바로크가구는 지난해들어 10월까지 22가지의 장롱 신제품을 내놓았다.

매달 2~3개 꼴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선택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주 요인은 업체간 과당경쟁 때문이며, 이는 제조.유통업체에 모두 엄청난 부담이 된다" 면서 "국제통화기금 (IMF) 구제금융시대를 맞아 업체들도 제품출시 과당 경쟁을 자제해 부담을 줄여야 한다" 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런 모델경쟁이 제조업체나 유통업체에 모두 적잖은 부담을 주고 있다.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기능을 조금만 바꾼 것이라도 신제품을 내놓기 위해서는 금형.생산라인 마련에 최소한 5억~수십억원, 기능 보완에 수천만~수억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유통업체로서는 조금만 늦게 팔리면 바로 재고 또는 단종모델이 되기 때문에 밑지고 팔아야 한다고 하소연이다.

한 종합가전 대리점 주인은 "2~3년전만 해도 모델이 많지 않고 신모델도 1년에 한두번 출시됐는데 작년부터는 2~3개월 단위로 짧아져 영업에 어려움이 많다" 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최근에는 유통업체들이 쌓이는 재고.전시상품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아울렛을 여는 기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아울렛은 제조업체가 직영하는 재고전문처리점이 주종을 이루는 반면 한국에서는 유통업체 소속 아울렛이 많다.

국내 최대 가전양판점인 전자랜드의 경우 지난 8월 아울렛1호점을 낸데 이어 지금까지 4호점을 열어 공장도가보다 10~30% 할인처분하고 있다.

컴퓨터분야 최대 양판점인 세진컴퓨터랜드도 20여개의 매장에 각각 5~6평 규모의 아울렛매장을 별도 운영하고 있다.

한 제조업체 상품기획담당자는 "업체간 과당경쟁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고, 이는 결국 소비자 가정의 잦은 모델로 이어진다" 면서 "IMF 시대를 맞아 자제하는 분위기가 시급하다" 고 말했다.

한편 최근 소비자보호원 조사를 보면 한국의 주요 가전제품 교체 주기가 ▶컬러TV의 경우 93년 8.8년에서 94년 7.6년, 95년 7.1년으로 짧아졌고, 같은기간 ▶냉장고는 8.6년→8. 1년→7. 1년▶세탁기는 7.4년→7년→6년으로 각각 단축됐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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