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규제개혁을 정조준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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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 정부 출범에 앞서 대통령당선자 측은 그동안 강조해 온 '작은 정부' 를 실현하고 효율적인 행정력을 갖추기 위해 정부편제를 다시 짜고자 정부조직개편위원회를 가동할 것이라 한다.

대통령이 국정을 수행함에 있어 가장 믿음직한 수단은 바로 행정부다.

따라서 새 대통령이 취임할 때마다 행정개혁론이 제기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새 정부의 국정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정부의 조직과 기능을 재정비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자신의 국가경영 철학이 행정개혁에 투영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실패작을 되풀이 할 뿐이다.

88년 발족한 행정개혁위원회는 당시 대통령의 개혁의지 결여로 불필요한 두 개 부처가 더 늘어났다.

93년 출범해 5년간 운영한 행정쇄신위원회는 많은 토의 건수에도 불구하고 행정의 효율과 정합성의 제고엔 크게 기여하지 못했고 작은 정부와는 역행하고 말았다.

실제 행정쇄신은 지엽적인 사안에만 매였을 뿐 공무원 수가 92년 82만명에서 오늘날 93만명으로 증가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특히 공룡과 같은 재정경제원의 철학 없는 탄생은 오늘의 금융위기를 불러온 원인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이제 국제통화기금 (IMF) 시대 국난을 극복해야 하고 다가오는 21세기 민족 웅비의 전기를 마련해야 할 새 정부가 추구할 행정개혁은 어디다 정조준해야 하나. 우선 작은 정부라야 한다.

세계화 시대 무한경쟁에서 우리 기업이 살아 남고 오늘의 경제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 지원이 정부보다 민간부문, 특히 기업으로 더 많이 배분되도록 해야 한다.

이제 전세계로 개방돼 '국경없는 지구촌 시장경제' 로 통합돼 가는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국제적 규범에 의해 제약을 받게 마련이다.

정부는 과거처럼 전략산업을 보호하고 집중적으로 육성.지원하던 정책을 펴나갈 수 없다.

산업의 성장과 경쟁력의 향상은 시장 메커니즘에 맡겨야 한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시장기능의 효율화를 위해 공정하고도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될 수 있도록 경기규칙을 만들고 잘 지켜지도록 감독하는 일이다.

또 세계화 시대 국가경쟁력의 우위는 정부 서비스의 질에 달려 있다.

'규제하는 정부' 가 아니라 기업하기 편리하고 장사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봉사하는 정부' 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시장이 제 기능을 하게 만들고 양질의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정부규제를 철폐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국가목표를 달성한다는 명분아래 본질적으로 민간활동에 개입하게 돼 있고, 공무원은 속성상 권력을 행사하고자 하며, 행정은 성질상 봉사보다 규제적 접근이 보편화돼 있다.

이렇게 정부 스스로 저항요소를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규제완화는 말뿐이고 항상 한계에 부닥친다.

따라서 진정한 규제개혁은 정부의 조직과 기능을 과감히 축소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행정개혁은 바로 규제개혁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것은 개방화 시대에 부응해 시장질서를 확충하고 규제완화를 실현하기 위해 작은 정부를 만드는 작업이라야 한다.

기존의 정부 조직과 기능을 전제로 '어느 것을 잘라 내야 하는가' 하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모두가 아깝고 또 아쉬워 만지작거리다 말게 된다.

또 이 눈치 저 눈치 보다 그냥 두게 된다.

따라서 제2의 건국하는 자세로 이 시대 꼭 필요한 기구와 기능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머지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 79년 영국 대처 총리의 정부혁신과 그 정신을 이어받은 뉴질랜드의 정부 빅뱅, 최근 일본의 행정개혁 노력 등이 우리에게 크게 참고가 될 것이다.

행정개혁이 실질적으로 규제개혁이라면 과연 누가 이 일을 맡아야 할 것인가.

행정실무의 밑바닥에서부터 국무총리를 지낸 행정통이 맡을 수 없다면 평생 동안 정부의 고객으로 몸소 행정 서비스를 받아 온 전문경영인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이제 세계화 시대 무한경쟁 속에서 정부의 조직과 기능은 기업 경영적 시각에서 재편성돼야 한다.

황인정<전 kdi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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