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한탕주의'…금융계 '안 도둑' 설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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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4개 종금사에 대한 업무정지에 이어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정리가 임박한 어수선한 틈을 타 거액의 예금을 빼돌린뒤 해외로 잠적하는 금융기관 직원들의 '한탕주의' 가 잇따르고 있다.

이같은 사고는 금융기관의 허술한 예금 관리를 악용해 주식 투자 등에 고객예금을 유용해온 일부 금융기관 직원들의 공공연한 관행이 결국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고객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 현황 = 서울 중부경찰서는 5일 서울중구을지로 D종금사 금융부 고재홍 (高載弘.37) 과장이 지난해 3월부터 12월초까지 吳모 (37) 씨 등 고객 2명의 인감을 위조, 기업어음을 사들인 뒤 연장하는 수법으로 모두 36억2천만원을 빼내 달아났다는 회사측의 고발에 따라 수사에 나섰다.

高씨는 吳씨 등 명의로 매입한 기업어음 만기가 임박하자 범행 발각을 우려, 지난해 12월12일 회사돈 3억원을 추가로 횡령해 홍콩으로 달아났다.

高씨의 횡령액 39억2천만원은 최근의 금융사고중 가장 큰 규모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21일에도 기업은행 이계상 (李啓常.35) 과장과 홍순옥 (洪淳玉.30) 씨가 PC뱅킹을 이용, 고객 예금 10억여원을 인출한 뒤 미국으로 출국했다.

역시 지난해 12월 전북은행 군산 명산동지점 고혁 (高爀.24) 씨가 대출계정을 허위로 꾸며 5억3천여만원을 횡령한뒤 잠적했으며 같은달 대구시 D종합금융 자금부 직원 金재봉 (28) 씨는 고객 지급준비금 5억3천만원을 빼내 달아났고 같은달 주식투자로 손해를 본 S종금사 金실로암 (37) 대리가 7억여원의 고객예치금을 빼돌렸다 경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 문제점 및 대책 = 전문가들은 금융기관 직원의 내부 금융사고가▶불투명한 거래 관행▶책임의식 결여▶신분 불안정 등 요인이 겹쳐 일어나고 있는데다 금융기관의 신고 기피.자체 해결 경향이 사태를 악화시킨다고 지적했다.

금융연구원 양원근 (梁元根) 박사는 "금융기관 직원들이 소위 임의매매에 나서거나 지급보증을 해줬다가 월급까지 차압당한 경우도 생기고 있다" 면서 "이면계약 등 불투명한 거래관행 철폐와 감독 강화가 시급하다" 고 지적했다.

외국어대 이균성 (李均成.56.상법) 교수는 "금융사 직원들에 의한 금융사고가 빈발함에 따라 고객들에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 이란 불안감을 줘 예금이탈이 가속화할 우려마저 있다" 며 "신분불안을 느끼는 금융사 직원들이 정상적인 업무수행을 할 수 있는 환경을 하루 빨리 조성해야 한다" 고 촉구했다.

증권감독원 검찰총괄국 이창성 (李昌成) 과장은 "금융기관들이 신용도 추락을 우려해 신고를 기피하거나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경향이 고쳐져야 하며 고객들이 정기적으로 자신의 예금거래 실적을 점검하는 것이 사고발생을 방지하는 대책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정제원.김소현.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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