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용석의 Wine&] 1000만원을 줘도 못 마시는 와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월요일이었던 20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고급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 ‘프리에르 로크’(Prieure Roch)의 생산자인 앙리 프레데릭 로크(47)였다. 프리에르 로크는 1988년 출시돼 20년 만에 정상급 부르고뉴 와인으로 성장한 ‘신데렐라 와인’이다. 로크는 광고나 마케팅에 시큰둥하다. 자신의 와인을 그 흔한 와인 박람회나 품평회에 소개한 적도 없다. 하지만 이 와인은 애호가들의 입소문을 타고 단시일 내에 명품 반열에 올랐다. 그 비결이 뭘까.

로크는 포도 재배에 제초제나 농약을 일절 쓰지 못하게 한다. 사람 손으로 포도를 따고 양조에 으레 들어가는 화학물질도 철저하게 배격한다. ‘와인은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 만드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든 ‘유기농 와인’은 비싼 가격에도 현지의 잘나가는 레스토랑에 입점돼 승승장구했다. 흥미로운 건 이 와인을 고급 레스토랑에 가장 먼저 들여놓은 이가 세계적 ‘스타 주방장’인 피에르 가니에르였다는 점이다. 로크는 “우리 무명 와인을 세상에 알린 가니에르는 은인”이라며 “그가 한국에 연 레스토랑(피에르 가니에르)에 우리 와인을 소개할 수 있어 영광일 따름”이라고 치하했다.

이 와인의 성공에는 로크의 남다른 개인적 배경도 한몫했다. 로크는 ‘부르고뉴의 전설’로 불리는 로마네콩티(사진)를 생산하는 DRC(Domaine de la Romanee Conti)의 대주주다. 한때 DRC의 공동대표를 지낸 그는 로마네콩티 성공 신화의 주역이다.

로마네콩티는 철저한 유기농법에 따라 한 해 6000병 정도만 생산되는 세계 최고가 와인이다. 최근 생산된 것 한 병은 1000만원에 달하지만 그나마 쉽게 구할 수 없다. DRC에선 로마네콩티 한 병에 자신들이 만드는 라타슈 세 병, 리쉬부르·로마네생비방·그랑에세조·에세조 두 병씩 모두 12병을 한 세트로 판다. 이마저도 물량이 많지 않아 나라별로 공급량이 할당된다. 국내에선 한때 24케이스가 수입됐지만 와인 시장이 커지면서 41케이스로 늘었다. 예약이 다 차면 기존 예약자가 취소해야 순서가 돌아온다. 대기업 ‘회장님’들도 예외는 아니다. 로마네콩티를 수입하는 신동와인 측은 “한국에서 로마네콩티 한 세트 값은 3000만원가량이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 회장들이 ‘왜 순서가 안 돌아오느냐’고 성화를 부리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로크는 품질과 희소성을 내세운 ‘로마네콩티 마케팅 전략’을 프리에르 로크에 적용해 다시 성공시킨 셈이다. “수확량보다 품질이 최우선이다. 와인을 만들 때나 마실 때나 타인의 취향을 쫓아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는 것이 로크의 조언이다.

손용석 포브스코리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