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해박함에 매료된 베르베르의 ‘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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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내가 세 번째로 접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이다. 여러 사람이 그의 기발한 상상력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나도 그의 작품을 좋아하지만 특히 매료된 것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방대한 지식이다. 그게 진실이든 허구든, 나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해준 건 확실하다.

베르나르는 장편소설을 쓸 때 생기는 긴장상태를 벗어나려고 짧은 소설을 쓴다고 한다. 누구나 가볍게 읽을 수 있고, 또 그런 가벼움에서 건질 수 있는 무언가를 묶어 『나무』라는 풍성한 단편소설집을 내놓았다. 그는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쳐놓는다. 가끔 누구나 꿈꾸고 생각해 봄직한 팬터지를 펼쳐놓는다. 그것을 읽고 있노라면 책 안의 우주는 내 것이 되고, 몇 시간의 시간은 몇 분으로 단축돼 흐른다.

그의 책은 무언가의 고리로 연결돼 있다. 아마도 그가 어릴 적부터 구축해 놓은 지식, 즉 수많은 이론과 가설이 소설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었기 때문이리라. 그는 일곱살 때부터 글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예전에 우리 연이가 문득 “아빠, 귤을 까면 그 안에서 호박이 나온다”고 말했다. 단지 어린 아이가 내뱉은 유아적 발상이 아닌, 점점 테크닉과 정보로 잃어가는 창조적 발상으로 느껴졌다. 창작과 상상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우리지만 정작 우리는 그것들을 없애고 죽이는 안타까운 현실에 살고 있지 않은가.

『나무』의 첫 대목에는 인간이 편리함을 추구하면 할수록 더욱 발전하는 인공지능 가전제품과 기기가 등장한다. 그러나 인간은 종국엔 그 편리함에 스트레스를 느끼고 한쪽 구석으로 내몰린다. 더욱 우스운 건 그것을 느끼는 주인공도 인공심장을 가진 한낱 기계였다는 ‘뒤틀린’ 시각이다.

“살아 움직이는 인간들이여, 그대들에게 진정 영혼이 있는가.” 나는 “영혼을 가지려 노력하는 중이다. 인간은 만들어져 가는 존재이므로”라고 대답하고 싶다. 우리는 언제나 인간적·자연적인 것을 바라지만 일상에선 기계의 편리함을 버릴 수 없다. 이를 풀려고 할수록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카오스 같은 현실로 글을 마치고 싶지는 않다. 그 속에서도 항상 꿈틀대고 있는 ‘붉은 피의 창조’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마지막 특권이므로.

박근형 연극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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