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13개 팀으로 나눠 전기·수도·가스 덜 쓰기 경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1102호 -169㎏, 1104호 +178㎏, 705호 -101㎏…’.

서울 강북구 수유2동 현대아파트 새댁팀 환경가계부의 일부다. 지난해 12월 이 아파트 팀원들의 이탄화탄소(CO2) 배출량을 2007년 12월과 비교한 것이다. 이 아파트 주민 70가구는 집집마다 전기·가스·수도 사용량을 기록한다. 매달 사용량과 전년도 같은 달을 비교하고 이에 맞춰 CO2 배출량을 기록한다. 배출량은 에너지관리공단에서 보급한 산식에 따라 계산한다.

70가구는 13개로 팀을 짰다. 팀장이 팀원 집을 돌며 CO2 줄이기를 설득하고 체크한다. 새댁팀은 그중 하나다. 20, 30대 새댁 9가구로 구성돼 있다. 이 아파트는 올해 1월 CO2 배출량이 2008년 1월에 비해 올 1월에는 762.8㎏ 늘었지만 새댁팀만 줄었다. 새댁팀의 참여가 그만큼 열성적이라는 뜻이다.

이 아파트 주민 이록(69·여)씨의 냉장고에는 ‘에코라이프 행동 리스트(에너지 절약 실천수칙)’가 붙어 있다. ▶목욕 때 계속 물을 틀어놓지 않기 ▶사용하지 않는 가전제품 주전원 차단 ▶냉장고에 음식을 넣을 때 식히기 등 7가지 행동수칙이다. 이씨는 “리스트대로 따라 하고 있는데, 해보니 그리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2007년 봄 주민자치위원장 서경석(66·여)씨 권유로 자치센터 강당에서 ‘환경 공부’를 했다. YMCA 강사가 지구온난화에 관한 동영상을 틀어주며 강의했다. 남극 빙하가 녹으면서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가 가라앉는 장면에서 주민들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2007년 8월 22일 ‘에너지의 날’ 불 끄기 행사에 100% 참여했다.

이것이 인연이 돼 서울 기후행동(CAP)의 CO2 줄이기 시범단지로 선정됐다. CAP는 서울시와 시민단체, 전문가들이 함께 만든 민관 협력체다.

하지만 막상 환경가계부를 만들자고 했을 때 모두가 흔쾌히 동의한 것은 아니다. 특히 팀을 만들어 경쟁하자는 얘기에 시큰둥했다. 자주 교육을 받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입주자대표 김혁(51)씨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110가구 가운데 70가구가 참여해 지난해 12월 CO2 줄이기 실험을 시작했다. 못 쓰는 그릇에 구멍을 뚫어 화분을 만드는 ‘리폼 공방’과 나눔 장터를 열었다.

김혁씨는 “정기적으로 주민 모임을 열어 에너지를 줄이고 낡은 등을 교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의 환경실험은 주변으로 확산됐다. 바로 옆 삼성아파트, 인근 번2동 주공임대아파트 5단지 1250세대 주민도 지난달 28일 지구촌 소등 행사에 참여했다.

강찬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