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영화 '가베' '체리 향기' 98년 개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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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페르시아의 신비가 98년 새해를 연다.

내년 1월1일 나란히 극장개봉하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체리 향기' 와 모센 마크말바프 감독의 '가베' 는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초청상영돼 호평을 받았던 이란영화. 독특한 스타일의 창조로 세계영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란영화의 대표적인 감독 두 사람의 대조적인 영화세계를 비교해 감상할 수있는 기회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이미 널리 알려진 '체리 향기' 는 우리가 세번째로 만나는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지만 마크말바프 감독은 '가베' 가 국내개봉 첫 작품. 이란 내에서의 흥행과 인기는 키아로스타미를 능가하는 베테랑이지만 국제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가베' 가 칸영화제에 출품되고 미국에서 개봉된 96년부터이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이란당국의 검열과 마찰을 피하면서도 깊이있는 삶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담아낸다면 마크말바프 감독은 팔레비왕조 시절 테러리스트 활동에 가담, 17살에 사형선고를 받았던 경력을 지닌 투사출신. 82년 데뷔한 이래 다양한 스타일과 내용의 영화를 만들어 '가베' 가 13번째 작품이다.

대조적인 두 감독이 서로 다른 주제와 스타일로 만든 작품들이지만 '체리 향기' 와 '가베' 는 인간의 삶을 꾸밈없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닮았다.

다만 '체리 향기' 가 이슬람교리가 금하는 자살을 소재로 택해 황토빛과 무채색으로 어둡지만 작은 희망을 찾을 수있는 삶을 이야기했다면, '가베' 는 페르시아 양탄자의 신비로운 전설을 빌어 이란 유목민들의 삶과 사랑의 이야기를 신비로운 색채에 담아 환상적으로 풀어낸다.

'체리 향기' 에서 끝없는 황토벌판을 차로 달리는 주인공 바디는 죽음을 꿈꾸는 중년남자. 그는 무척 피곤해보인다.

영화는 자신의 자살을 도와줄 사람을 찾아다니는 바디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얼마나 삶이 소중한 것인가를 역설적으로 이야기한다.

'가베' 는 다큐멘터리와 팬터지가 어우러진 독특한 형식의 작품. 마크말바프는 애초에 양탄자를 짜는 유목민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찍었으나 후반작업 중 작품의 유일한 전문배우인 사하예 죠다를 양탄자 속의 주인공 가베로 캐스팅해 허구를 가미했다.

카페트에서 튀어나온 가베가 전설을 풀어가 듯 아버지로 인해 연인과 결합할 수없었던 이야기를 풀어간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와 하늘.바다.들판의 꽃에서 자연의 빛깔들을 얻어내는 교실 장면은 마법과도 같은 색채의 향연으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이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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