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일손 놓았다"…환율폭등에 수출입업무 마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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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환율이 2천원선에 육박하면서 수출입은 물론 기업의 자금 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특히 종금사들이 기업 대출금을 29~30일까지 초단기로 연장해준 경우가 많아 상환기일이 더이상 연장되지 않을 경우 연말에는 기업들의 무더기 도산마저 우려된다.

환율폭등으로 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 (BIS) 자기자본비율 맞추기가 더 어려워져 기업대출금 연장이 사실상 막힌데다 수출입 네고 (선적서류매입 및 수출대금대출)가 더욱 힘들어져 기업들의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다.

기업들이 고육지책으로 일본 상사에 수출입 네고를 의뢰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으며, 국내 기업들은 외국의 기술도입에 따른 로열티를 지급하기 위해 우리 돈을 마련해도 은행이 달러 송금을 거부하고 있다.

기업들은 23일 오전부터 환율관련 대책회의를 잇따라 열고 있지만 "사실상 아무런 대책이 없다" 고 말한다.

D그룹 임원은 "환율이 2천원에 육박하고 금리도 폭등해 정상적인 기업활동이 불가능해졌다" 고 말했다.

H그룹 관계자는 "환율폭등으로 은행들의 BIS 비율이 악화돼 대출금 회수압박이 더 강해질 것" 이라고 우려했다.

환율폭등으로 보통 신용장 개설도 거의 마비됐다.

모종합상사 외환팀장은 "어제까지 신용장 개설을 해주던 모은행이 23일부터 제한을 가하고 있고 외국계 은행도 한도를 축소하고 있다" 고 말했다.

H석유화학 자금부장은 "국내은행들이 수입신용장을 개설해주지 않아 일본 상사를 통해 납사를 수입하고 있다" 고 말했다.

무역협회는 30개 주요 수출입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은행의 신용장 매입은 수출입 모두 최근 30%선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정유.철강 등 수입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은 치솟는 환율 때문에 환차손 (換差損) 은 고사하고 외화지급불능사태마저 걱정하고 있다.

모정유사 자금담당자는 "달러는 고사하고 수입대금 결제용 달러를 사기 위한 원화마저 구하기 힘든 상황이라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외화지급불능사태마저 우려된다" 고 말했다.

신성식.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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