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을 찾아서]이생진 시집 '하늘에 있는 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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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장사에 실패한 사람들끼리/생 (生) 은 고사하고 사 (死) 까지 실패한 사람은/실패한 것에 미련을 두지 말고/실패한 사람끼리 살면 어떨까/…/대통령이 되려다 실패한 사람도/대통령이 되어서 실패한 사람도/만재도로 오라 네게 시를 가르쳐주마" 평생을 섬에서 섬으로 떠돌고 있는 시인 이생진 (李生珍.68) 씨가 신작시집 '하늘에 있는 섬' 을 펴냈다 (작가정신刊) .69년 '현대문학' 을 통해 등단한 이씨는 지난 30여년간 전국의 1천여 외로운 섬들을 찾아다니며 '그리운 바다 성산포' '섬에 오는 이유' 등 주로 바다와 섬 그리고 고독을 노래한 시집 17권을 출간해오고 있다.

국토이면서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는 섬. 목포에서 흑산도로 가서 다시 소흑산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겨우 닿을 수 있는 섬 만재도. 10여년간 그 섬에 닿으려 노력했으나 풍랑 때문에 발을 못딛고 번번이 파도 속에서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그 섬을 지난 6월에 찾아 쓴 '만재도' 연작 93편이 이번 시집에 실렸다.

위 시 '실패한 사람들끼리' 에서처럼 만재도는 멀리 떨어진 외로움 자체로 시를 가르쳐주겠다며 지친 우리를 부르고 있다.

“그 자리에서/떠나지 못하는 것은 섬이다/외로움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섬이다/외로움에 눌려 바위가 된 것은 섬이다/내가 너에게서 떠나지 못하는 것은 섬이요/네가 나에게서 떠나지 못하는 것도 섬이다” '유배된 섬' 한 부분에서 처럼 이씨에게 섬은 '떠나지 못하는 것' 이다.

너에게서, 나에게서, 외로움에서, '그 자리에서' 떠나지 못함이 섬이다.

있어야 할 그곳에서 떠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많은 이별과 상실로 아픈 것이 삶 아니든가.

못 떠난 것만 바위처럼 굳게 모여 있는 섬은 부유하는 우리네 삶에 얼마나 위안인가.

“고독의 나라 만재도로 간다고 할 때 그들은 말렸다/…/그곳엔 영혼밖에 못 간다고/그곳엔 바람밖에 못간다고 말렸다/그렇지만 와보니/그곳엔 원추리가 미리와 있었고/그곳엔 염소가 와 있었고/그곳엔 구름이 와 있었고/그곳엔 무수한 고독이 너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다고 할 때 그들은 말렸다' 는 시 제목 처럼 이씨가 좀 더 깊은 섬을 찾을 때마다 주위에서는 말렸다.

그러나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바다를 바라보며 자란 이씨는 영혼의, 고독의 고향인양 섬을 찾곤 했다.

잡다한 현실은 물론 육체마저 떨구고 찾은 섬에서 이씨는 원추리.달팽이.염소.나비.새 등 인간의 마음에 재단되지 않은 자연들과 만났다.

그리고 바람과 구름과 원초적 그리움의 모태, 고독한 자신과 만나 시를 썼다.

섬에 취해 그저 터져나온 시들이라 이씨의 섬 시들은 어려운 꾸밈이 없어 쉽게 읽힌다.

쉬우면서도 섬뜩하게 우리의 영혼을 울리는 시들도 눈에 띈다.

“등대가/ '나 여기 있다' 고/밤새껏 반짝인다/육체와 강제로 헤어진 영혼이/어디에서 외톨이 되어 방황하느냐고/ '나 여기 있다' 며 반짝인다/그런 때는 불빛이 쇠망치 같다.”

시 '신호' 는 등대를 영혼의 신호로 보고 있다.

우리의 심혼을 탐조하며 쇠망치 같이 둔중한 울림을 주고 있는 이씨의 시를 따라 문득 섬으로 떠나고 싶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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