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녀를 뭐라 부를까. 알파걸? 엄친딸?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을 향해 달리는 또 한 명의 소녀가 있다.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서정화(19)다. 그는 일반 운동선수들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학교를 다니며 수업을 받고 시험도 쳤다. 학원도 다녔다. 시간을 쪼개 훈련했고 대회에 출전했다. 이를 악물고 병행한 공부와 운동. 결실은 달콤했다. 미국 대학 합격(공부)과 올림픽 출전권(운동)을 모두 잡았다.
#공부하는 정화
서정화는 공부만 몰두하기 힘든 처지다. 모글스키 국가대표인 그의 하루는 운동으로 시작된다. 새벽에 일어나 1시간 남짓 운동하고 등교한다. 학교에서 정규수업에 유학반 수업까지 듣는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오면 자정이다. 대표선수 소집 훈련이나 대회 때는 이런 일과도 사치스럽다. 소집훈련 때는 ‘등교’ 대신 훈련장으로 ‘출근’한다. 훈련 후 유학반 수업을 받으러 학교에 간다. 빼먹은 수업은 빌린 노트와 참고서로 독학한다. “인강(인터넷 강의)은 시간이 부족해 못 듣는다”는 그다. 대회도 웬만하면 방학 때 출전한다. 학기 중의 중요 대회 때는 체험학습을 신청, 결석 일수를 줄인다. 내신 관리 때문. 그의 내신은 평균 4등급 정도다.
힘들지는 않을까. 서정화는 ‘공부만 하면 간단한데’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고1 때는 전지훈련 도중 “일반고로 전학시켜 달라”고 떼쓴 적도 있다. 그런데도 지금의 길을 고집한 이유. “훈련 마치고 노는 다른 선수를 보면 짜증 나지요. 그런데 스키는 재미있어서 그만둘 수 없고, 그렇다고 공부를 포기할 수도 없어요. 선수 생활 이후 인생도 중요하니까요. 남의 인생에 얹혀사는 걸 바라지 않아요.” 그의 장래 희망은 판사였다. 최근에는 “다른 길이 있을지 모른다”며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운동하는 정화
서정화는 국내보다 모글스키 저변이 두터운 일본에 더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열린 2007년 국제스키연맹(FIS) 주니어 레이스, 지난해 FIS 레이스에서 우승했다. 이케다 야쓰시 일본 주니어대표팀 코치가 “함께 올림픽 메달을 따 보자”며 개인코치를 자청했다. 이케다 코치는 21일 시작되는 서정화의 캐나다 전지훈련에 합류한다. 서정화는 “공부 없이 운동만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들떠 있다. 턴 기술 등 테크닉이 좋은 그의 약점은 체력. 장기간 집중훈련을 하지 못한 탓이다. 전훈 비용 일부는 그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장학금을 신청, 지원받는다.
서정화는 “원래 밴쿠버 올림픽 목표는 결선(16강) 진출이었는데 메달 욕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지난달 세계선수권 싱글 성적(15위)이면 충분하다. 그의 목표는 2010년이 아니다. “여자 모글의 전성기가 20대 중·후반이에요. 제 목표는 2014년 소치(러시아) 겨울올림픽 금메달입니다.”
글=장혜수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모글스키=모글(눈이 파이고 쌓여 울퉁불퉁한 상태) 슬로프에서 점프·턴 등 기술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완주하는 스키 종목. 1992년 겨울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