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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된 브랜드 파워 살리면서 뮤지컬만의 색깔 재정립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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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호 05면

영화(Movie)를 뮤지컬(Musical)로 각색한 이른바 ‘무비컬’(Movical)이 뮤지컬계의 주요 트렌드로 떠오른 지 오래다. 뮤지컬의 원작은 보통 유명한 시·소설·희곡 등의 문학작품이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 뮤지컬의 본고장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는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 부쩍 늘어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환영을 받는 사례가 늘어났다. ‘프로듀서스’ ‘속속들이 현대적인 밀리’ ‘헤어스프레이’ ‘스패멀랏’ ‘금발이 너무해’ ‘제너두’ ‘빌리 엘리어트’ 등을 비롯해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 ‘슈렉’과 같은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도 다수 등장했다.

무비컬, 이종 교배 성공하려면

국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2004년 이후 임순례 감독의 동명 영화를 무대로 옮긴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비롯해 ‘댄서의 순정’ ‘싱글즈’ ‘라디오스타’ ‘내 마음의 풍금’ ‘파이란’ ‘미녀는 괴로워’ ‘색즉시공’ 등이 대거 소개되었고, 현재 ‘주유소 습격사건’ ‘마이 스케어리 걸’(원작: 달콤 살벌한 연인)이 공연 중이며, 향후 ‘번지점프를 하다’ ‘은행나무 침대’ 등이 제작될 예정이다. 최근에는 아예 영화 개봉과 함께 뮤지컬 제작 계획이 동시에 터져 나오기도 한다. ‘용의주도 미스신’ ‘비스티 보이즈’ ‘미인도’ ‘아내가 결혼했다’ ‘과속스캔들’ 등이 이에 해당한다.

영화가 뮤지컬로 변모하는 게 최근의 경향이지만 과거에는 정반대였다. 알 존슨 주연의 ‘재즈 싱어’(1927)는 할리우드 최초의 유성 영화인 동시에 뮤지컬 영화였다. 주인공 존슨의 직업이 바로 민스트럴 쇼의 배우이며 영화의 상당 분량을 무대 위의 쇼 장면을 충실하게 재연하는 데 할애하며 재미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콤비가 발표한 ‘오클라호마!’(1943)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황금기를 열었고, 수많은 명작이 쏟아졌다. 그리고 할리우드에서는 무대를 거의 시간차 없이 필름으로 옮긴 뮤지컬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영화와 뮤지컬의 적극적인 동거는 1960년대 중반까지 계속됐지만, 항상 한발 앞서간 것은 무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소설가나 희곡 작가가 주도했던 스토리텔링의 주도권을 TV와 영화의 발전으로 인해 영상 매체의 작가가 가져가면서 덩달아 뮤지컬 대본의 원천도 바뀌었다. 영상 매체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을 매료시킨 영화의 탄탄한 스토리와 검증된 캐릭터는 이제 뮤지컬의 가장 훌륭한 재료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또한 무비컬은 마케팅 면에서도 영화가 획득한 익숙한 브랜드 파워를 업고 홍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영화계의 불황이 역설적으로 무비컬의 부흥을 이끈다는 분석도 있다. 많은 영화사가 현 상황을 타개할 방안으로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 Use) 차원에서 자사의 영화 콘텐트를 재활용하거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기획을 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무비컬 제작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영화를 무대로 옮기는 작업은 제작자들에게는 매우 구미가 당기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일단 원작이 지닌 지명도와 검증된 스토리텔링이 있고, 여기에 음악만 입혀 춤을 곁들이면 되는 ‘간단한’ 작업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무비컬 제작은 의외로 쉽지 않다. 먼저 장르 간의 차이는 물론이고 제작 시점에 맞게 컨셉트를 재정립해야 한다. 플롯과 캐릭터도 필요하면 변경해야 하고, 영화의 교차 편집과 디졸브 같은 효과를 무대에서는 간결한 장면 전환으로 처리해야 한다.

또한 영화에서 배경과 분위기를 설명해 주는 미장센은 무대에서는 주·조역, 앙상블 배우들이 골고루 떠맡아야 한다. 이들이 부르는 캐릭터 송은 애초에 설정한 작품의 배경과 컨셉트에 맞아야만 하며, 영화에서 모두가 기억하는 명장면은 충실한 재현과 새로운 무대 효과를 적절하게 교배를 통해 무대에 펼쳐야 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무대 관객은 영화 관객에 비해 상대적으로 리얼리즘을 기대하지 않고 ‘낭만적인 관용’을 베푼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나친 리얼리즘과 하드코어적인 내용을 순화하고, 원작에 대한 지식 없이도 즐길 수 있도록 쉽고 간결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산업화 단계에 진입한 우리나라의 뮤지컬 시장은 영화나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콘텐트의 적극적인 확장을 통해 장르를 넘나들며 착실하게, 아니 매우 빠르게 백 년 넘는 뮤지컬의 본고장 브로드웨이의 수순을 밟아 가고 있다. 이러한 열풍의 중심에 있는 무비컬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무비컬이 단지 창작이 쉬워 보인다는 이유로 졸속으로 제작된다면 새로운 스토리, 새로운 음악의 탐험을 원하는 미래의 관객들로부터 외면받게 될 것이다. 지갑을 여는 관객은 항상 ‘원작’을 뛰어넘을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무대는 살아 있는 배우와 오케스트라가 존재하는 곳이며, 스크린과는 다른 감수성과 재미가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글 조용신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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