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늘 선수 아버지가 밝힌 ‘아빠 캐디’ 애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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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서 못해 먹겠습니다. 하지만 어떡합니까, 딸인데….”

17일 롯데마트 여자오픈이 끝난 뒤 김하늘(21·코오롱엘로드)의 부친 김종현(46)씨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몇 차례 짧은 버디 퍼팅을 놓친 것이 아쉽다. 내가 좀 더 라인을 잘 봐줬어야 하는데…”라며 자책했다. 김하늘은 합계 2언더파 공동 7위에 올랐다.

김하늘이 프로에 데뷔한 2007년부터 캐디를 맡은 그는 “남들은 ‘경치 좋은 골프장에서 좋은 공기 마시며 딸의 플레이를 곁에서 지켜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하는데 그런 분들에게 가방 한번 메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아마 ‘부럽다’는 소리가 쏙 들어갈 겁니다”라고 말했다.

캐디 일 중 가장 힘든 것은 공식 연습라운드 때 하는 야디지북 제작. 거리 측정기를 사용해 벙커, 스프링클러, 배수로, 거리말뚝 등 주요 지형지물로부터 그린 에지까지의 거리를 측정한다. 또한 그린 위에서는 볼을 굴려가며 꼼꼼하게 그린 경사를 체크해야 한다. 다른 선수들이 연습하고 있기 때문에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빠르게 측정해야 한다.

그는 “야디지북을 한번 만들고 나면 녹초가 된다”고 실토했다. 또 “내가 거리를 잘못 계산해 낭패를 볼 때가 있다. 이럴 땐 다음 홀에 가서 조용히 자수를 한다. 딸이 샷에 대해 자신감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캐디와 마찬가지로 김씨도 티오프 시간 3시간 전에 일어나 먼저 날씨를 확인한다. 비가 올 수도 있는 날에는 가방에 우비, 마른 수건, 볼 닦는 수건, 우산 등을 챙겨야 한다. 초콜릿, 과자, 바나나 등 간식거리도 빠트리면 안 된다. 출발하기 전에는 반드시 화장실에 간다. 라운드 도중 자리를 비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골프는 민감하고 복잡한 운동이다. 플레이가 안 풀리면 선수를 달래야 하고, 성적이 좋을 때에는 느슨해지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 딸의 심리나 특성을 부모들이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직접 가방을 메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제주=문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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