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브로드웨이는]4.<끝>동양소재 작품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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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김향란 (33) 과장은 삼성영상사업단 공연팀 소속이다.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다 이곳에서 일한 지 5년째가 되는 공연분야의 準베테랑. 남다른 영어 실력때문에 김씨는 해외 수입작품의 '딜러' 로서 브로드웨이 현장을 누비고 다닌다.

이젠 이곳의 유력한 거래선과 닿아있는 한국쪽 딜러로서 김씨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다.

지난 11월 김씨는 다시 브로드웨이를 찾았다.

삼성이 투자한 뮤지컬 '타임 앤드 어게인' 의 진행상황을 살펴보는 동시에 차기 수입작품을 선정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번엔 김씨의 어깨가 더 무거웠다.

그가 이젠 외국 것을 사기만 하는 단순한 바이어가 아니라 '수출역군' 의 임무까지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에 오기전 한창 호암아트홀에서 히트를 치던 '난타' 의 수출 가능성을 타진해 달라며 제작자측이 김씨에게 특별 부탁을 했다.

김씨는 공연 비디오와 영문 팸플릿, 사진등을 가방에 넣고 가 방문하는 곳마다 풀어 놓았다.

김씨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IMG아티스츠사. 낸시 가브리엘 부사장과 대면한 김씨는 다짜고짜로 '난타' 의 테이프를 강권했다.

'잼 온 더 그러브' 란 이곳의 제작물에 대한 정보을 얻는 대신 '난타' 의 (오프) 브로드웨이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 싶었다.

김씨는 이런 식으로 사흘동안 '브로드웨이 아시아' 와 '콜럼비아 아티스츠 시어트리컬' 등 3개사를 더 방문했다.

물론 그의 가방속엔 '난타' 의 테이프가 빠질 리 없었다.

그러나 막상 '순례' 를 마친 뒤 김씨는 뭔가 허전했다.

그의 가방의 부피가 늘 김씨를 서글프게 만들었다.

김씨는 고작 '난타' 한 작품을 들고 팔러 다닌 대신 그곳을 나설 땐 언제나 몇배의 외국공연물이 가방을 채웠다.

여러 기획.제작사에서 준 테이프와 관련자료등은 가방에 우겨 넣고도 모자라 보조가방까기 동원할 정도로 많았다.

김씨의 가방은 늘 이같은 '무역역조' 다.

그만큼 브로드웨이, 더 나아가 뉴욕의 무대는 아직 우리에게 난공불락의 요새로 남아있다.

다소 무모하더라도 '난타' 가 이같이 브로드웨이를 '노크' 하는 것만도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후 지금까지 '난타' 에 대한 연락은 없다.

단지 아시아시장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브로드웨이 아시아' 만이 "좋은 공연물로서 잠재력이 있다" 며 추가 검토중이란 사실만 전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김씨는 단념하지 않는다.

곧 당당히 우리 것이 브로드웨이 무대에 설 날도 멀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김씨는 "브로드웨이도 참신한 아이디어의 빈곤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며 " '미스사이공' '왕과 나' 등 동양 지향의 작품이 히트를 치고 있는 이상 바로 지금이 우리도 한몫을 거들 적기" 라고 힘주어 말했다.

IMF시대 김과장 가방의 '무역역조' 가 얼마나 일찍 끝날 것인가.

이제 우리 연극인들의 아이디어에 달렸다.

뉴욕 =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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