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연수생 귀국행렬 "생활비 감당 못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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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생활비가 떨어져 무조건 귀국했어요. 고국사정 뻔히 아는데 부모님에게 손 벌리기도 미안하고…. ”

서울 S대를 졸업하고 4월부터 미국 보스턴에서 어학연수를 받던 李모 (24) 씨는 환율폭등으로 인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짐을 싸들고 13일 귀국했다.

李씨는 "유학 초기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든 생활비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고 털어놓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부근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에 다니던 朴모 (32) 씨도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해 지난 10일 귀국했다.

朴씨는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어학연수 온 학생 대부분이 서둘러 짐을 싸고 있다.

특히 장학금 혜택이 적은 음.미대와 경영학 석사과정에 재학중인 유학생 상당수가 귀국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부부 유학생은 여자쪽이 학업을 그만두는 사례가 많다" 고 전했다.

최근 한달새 달러 환율이 2배 가까이 폭등하면서 중도 귀국하거나 계획했던 유학.해외연수를 취소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김포공항과 항공사에 따르면 최근 미주지역으로 출발하는 항공편 탑승률이 55~70%에 머무르는데 비해 귀국편 항공기 탑승률은 80~90%나 되고 귀국유학생용 특별기도 띄우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예년엔 겨울방학을 고국에서 보내기 위해 돌아오는 유학생들이 20일 이후에나 몰렸지만 올해는 '탈 (脫) 유학족 (族)' 들로 인해 귀국행렬이 열흘 이상 앞당겨졌다" 고 말했다.

귀국학생이 크게 늘자 대한항공은 19일 뉴욕~서울 노선에 특별기를 운항하는 이외에도 3~4편의 특별기 운항을 검토중이며 아시아나항공도 지난 1일부터 이례적으로 로스앤젤레스~서울 노선을 주 11회에서 14회로 증편했다.

러시아나 중국쪽도 형편은 마찬가지. 러시아 모스크바의 유학생 李모 (23) 씨는 "이 지역에 단기연수생을 포함, 1천여명의 유학생이 있으나 절반 이상이 내년 1~2월에 귀국보따리를 쌀 전망" 이라며 쓸쓸해했다.

또 단기 중국어 어학연수를 위해 한국 학생들이 많이 찾는 중국 베이징 (北京) 어언 (語言) 대 관계자도 "이번 겨울엔 한국인 학생들의 신청이 거의 없다" 고 했다.

이밖에 국내 유학.어학연수 알선업체에는 상담 건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어학연수 취소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PC통신 '경제살리기 운동' 난에도 어학연수를 포기하겠다는 글이 연일 뜨고 있다.

영국으로 출발예정이었던 金모 (21) 씨는 "계약금 70만원을 손해보고 연수를 취소했다" 고 PC통신에 글을 올렸다.

정제원·김창우·전진배 기자, 모스크바 = 김석환·베이징 = 문일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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