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후보 TV토론 스케치…정책토론 뒷전 흠집내기 열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14일 저녁의 TV토론회는 세번째이자 마지막이었다.

유세에 지치고 목이 쉰 3당 후보들은 한치도 물러남이 없었다.

세 후보는 점잖은 용어에다 존댓말을 썼지만 그 속에는 쌓일대로 쌓인 감정의 칼을 세웠다.

병역.IMF재협상론.비자금.경선불복 등을 둘러싸고 세 후보는 소리를 내며 부닥쳤다.

후보들은 사안별로 두 사람이 짝을 이뤄 상대의 한 후보를 몰아세웠으나 대체로 김대중 - 이인제후보가 이회창후보를 강하게 비난하는 형세였다.

토론의 주제는 사회.문화였지만 앞서의 토론회처럼 후보들은 대부분 주제에서 멀리 벗어나 싸웠다.

한 교사는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대통령후보들이 국민을 무시하고 있다" 고 흥분했다.

…토론회 전후의 기조연설은 초점의 차이를 드러냈다.

이회창후보는 '껴안고 피해가기' 였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다른 두 후보의 좋은 정책을 받아들이고 누가 되든 그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 "나는 아직 이인제후보를 우리 당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는 등 화합론을 폈다.

그는 말미에서도 "나는 사랑의 바탕위에서 화합과 안정을 이루겠다" 며 안정론을 내세웠다.

이인제후보는 이회창후보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는 기조연설에서 이회창후보가 최근 설파하는 "이인제를 찍으면 김대중이 된다" 는 논리를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승기를 잡았다며 "이인제를 찍으면 이인제가 된다" 며 "젊은 일꾼 이인제에게 기회를 달라" 고 호소했다.

김대중후보는 연설 말미 동정론을 강하게 전달했다.

그는 자신의 세차례 낙선에 대해 "6.25이후 최대의 국난인 IMF사태에 나를 쓰려고 하늘이 예비한 것" 이라는 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른 두분은 다음번에도 나올 수 있지만 나는 다음엔 나올 수 없다" 며 유권자의 감선 (感線) 을 건드리려 했다.

…후보들은 어떤 주제가 나와도 정치성 공격으로 활용했다.

청소년교육이 나오면 상대방의 도덕성을 도마위에 올렸고 환경주제 순서에서는 엉뚱하게 '정치환경' 샅바싸움을 벌였다.

사회자가 학원폭력 해법을 물었으나 병역과 현역중령의 '양심선언' 이 화제였다.

질문이 통신시장개방.전자주민카드같은 전문적인 분야로 옮아갔지만 후보들은 여전했다.

전자주민카드 문제가 나오자 김대중.이인제후보는 한나라당에서 金후보의 비자금을 폭로한 것을 강하게 비난하며 "국민 사생활 침해" 라고 공격했다.

…이인제후보가 김대중후보를 공격한 것은 청와대자금 20억원 수수와 3金청산문제 등 일부였다.

그는 "우리는 金후보를 국가원로로 정중히 모실 준비가 돼있다" 며 시청자의 웃음을 유도했다.

김대중후보는 이날 토론에서도 지난 2차토론에 이어 이인제후보를 거의 건드리지 않아 범여권 성향의 유권자들을 두 李후보가 나눠 갖도록 하는 국민회의 선거기본전략을 충실히 이행했다.

…토론회가 열린 SBS 일산 탄현스튜디오에 도착한 세 후보는 굳은 표정을 좀처럼 펴지 못했다.

막판까지 토론회 준비에 열중한 탓인지 이회창.김대중후보는 20~25분이나 지각했다.

이인제후보는 정시에 도착한 후 곧바로 분장실로 들어가 정책실에서 마련한 70여쪽의 최종 요약집을 숙독. 이인제후보 분장실에는 고양의 지지자가 그의 건강을 위해 기증했다는 산삼이 배달되기도 했다.

김학원 (金學元) 비서실장은 나무상자 속의 산삼을 보이며 "지난 TV토론회때 이인제후보의 모습을 본 지지자가 힘들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달라고 보냈다" 고 자랑. 이회창후보가 도착하자 현관에서 1백m 떨어진 곳에서부터 "대통령 이회창" 을 연호하던 1백여명의 청년단원들은 일제히 환호성. 20여분 늦게 도착한 김대중후보는 당원들이 준비한 꽃다발을 받으며 토론 준비에 들어갔다.

스튜디오에 들어선 후보들은 1, 2차 토론회 때와는 달리 서로 기념촬영을 하면서 손도 맞잡지 않고 팽팽히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토론 시작을 기다렸다.

가장 먼저 스튜디오 안에 들어온 김대중후보는 자리에 앉자마자 뭔가를 열심히 메모했다. 이어 이인제후보가 입장해 고개를 숙이고 메모지에 답변 요지를 정리하던 김대중후보 자리로 다가가 "金총재님" 이라고 말을 걸자 金후보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이인제후보와 악수를 나눴다.

이인제후보는 이를 넌지시 바라보고 있던 이회창후보에게도 다가가 정중하게 악수를 건넸다.

이어 기념촬영 때는 과연 관례에 의해 이회창후보가 가운데에 서게 될 것인지, 아니면 이날 추첨에 의해 가운데 자리에 앉은 이인제후보가 중앙에 서게 될 것인지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먼저 앞으로 나간 두 후보를 두고 뒤늦게 다가간 김대중후보가 이인제후보 옆에 섬으로써 자연스럽게 이인제후보가 중앙에 위치하게 됐다.

세 후보들은 준비된 자료를 보며 마지막 요약정리. 방송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세 후보는 모두 책상에 준비된 물잔에 자주 입을 대는 등 긴장된 모습이 역력했다.

김진·김현기·채병건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