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사실상 조기출범 해외 시각…"새정부 의지따라 신용 회복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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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가부도가 난 후 대통령이 취임하면, 그럼 새 대통령은 '대한민국 재산보전관리인' 인가. "

서울이 대선 일정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동안 뉴욕 금융시장은 시시각각 한국을 국가부도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고 있다.

11일 (현지 시간) 산업은행의 20억달러 '정크 본드' 발행계획을 월가의 냉혹한 '돈 인심' 은 끝내 차버렸다.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S&P) 는 지난달 25일 한국의 국가신용 평가등급을 A+에서 A - 로 한꺼번에 두 단계 내리면서 다음과 같은 조건을 달았다.

"대선 이후 출범할 새 정부에 얼마나 힘이 실리는가, 시장 원리에 따른 개혁 약속을 다음 정부가 얼마나 이행하는가 등을 두고 보아 여차하면 등급을 더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S&P는 새정부 출범 때까지 기다려주지도 않았다.

S&P는 11일 다시 한국의 평가등급을 이번에는 무려 세 단계나 낮은 BBB - 로 내리면서 "만일 현 정부와 차기 정부가 중앙은행 독립의 국회 입법을 포함, IMF 프로그램의 확고한 실행 의지를 갖고 움직인다면 평가등급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고 밝혔다.

말이 점잖지, 사실상 대선을 전후한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평가등급을 언제든지 또 다시 내리겠다는 무서운 엄포다.

BBB - 보다 단 한 단계라도 더 내려가면 이제 한국은 '국제 사채시장' 이라 할 '정크 본드' 시장밖에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다.

산업은행이 11일 뉴욕에서 당한 것처럼 그때는 '대한민국 국채' 를 들고 나가도 더 이상 '나라 대접' 을 못받는다.

'정크 본드' 의 말뜻 그대로 '쓰레기 채권' 이 되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미 유력 증권사의 아시아지역 담당 임원은 "전망이 보이기만 하면 신뢰회복의 가닥이 잡히겠으나 곧 선거를 치를 한국은 내년 2월에나 정권이 바뀌게 돼있어 새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지 알 수 없는 상황" 이라고 지적한다.

워싱턴 싱크탱크 가운데 하나인 국제금융연구원의 빌 클라인 부원장도 "새 정부의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어렵다" 고 강조한다.

워싱턴 = 김수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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