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대에 한국요리교실 여는 박진선 샘표식품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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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한식 세계화를 위해서는 외국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맛을 창조해야 한다. ‘맛의 블루오션(blue ocean: 미개척시장) 찾기’가 필요하다.”

샘표식품 박진선(59·사진) 대표는 식품 전문 기업인으로서 한식 세계화 방안을 이렇게 제시했다. 중국 베이징대학에 한국요리교실을 정기 개설하는 방안 등을 협의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그는 14일 저우치펑(周其鳳) 베이징대 총장과 만나 협력 의향서에 서명했다. 그는 이 대학에 장학금을 전달한 뒤 ‘한국 장수 식품기업의 성공 비결’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본지는 이날 베이징대학 캠퍼스에서 박 대표를 별도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베이징대에 한국요리교실을 개설하는 이유는.

“중국인들에게 한국 음식 문화를 알려주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한국의 맛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해 한국 음식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려고 한다. 식품기업은 제품만 달랑 들고가서 팔려고 하기 전에 음식 문화를 먼저 알려야 한다.”

-요리교실은 어떻게 운영하나.

“앞으로 매년 두번 베이징대학에서 열린다. 올해는 5월과 11월이다. 이틀간 오전과 오후로 나눠 모두 4회의 강좌를 진행한다.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2003년 샘표식품이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서울 본사에 개설한 요리교실인 지미원(知味園) 소속 요리전문가가 직접 요리를 할 예정이다. 베이징대학이 장소를 제공하고 수강생을 모집하게 된다.”

-‘음식은 장맛이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한국·중국·일본의 장맛은 어떻게 다른가. “간장의 제조 원리와 공정은 비슷하다. 중국은 색깔과 향을 중시한다. 일본은 간장 자체가 감칠맛을 낸다. 조선 간장은 자신의 맛을 드러내기보다 국·나물무침 재료의 맛을 돋보이게 하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을 하는 게 특징이다.”

-‘음식천국’에 산다는 소리를 듣는 중국인들의 입맛을 조선 간장이 바꿀 수 있겠나.

“사람의 입맛을 바꾸기는 솔직히 쉽지 않다. 한번 바꾸는 데 10년이 걸린다고 하지 않나. 다만, 우리는 중국인들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맛을 선보이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중국인의 입맛에 가장 맞는 음식은 중국인이 가장 잘 만들 것이다. 한국의 맛을 기초로 하되 중국인이 거부감을 느낄 부분을 제거해 중국인들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적절하게 개량하면 충분히 먹힐 것이다. 이미 중국 중산층들이 자국 제품보다 5배 이상 비싼 값의 고급 샘표간장을 사서 쓰기 시작했다”

-식품 전문 기업 경영인으로서 볼 때 음식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안전은 기본이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맛이다. 맛을 결정하는 3요소는 신선한 재료, 이를 다루는 요리사의 기술, 음식재료의 맛을 부각하는 소스(조미료)다. 한식이 세계로 나가려면 한국의 전통 소스인 간장·된장·고추장을 만드는 기업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한식이 한반도 울타리에 갇혀왔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우리 고유의 음식 문화를 상당 부분 잊어버렸다. 먹고 살만 해지면서 우리의 것을 되찾기 시작했지만 좋은 한식을 제대로 즐기기에는 아직도 부족하다. 더 노력해야 한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박진선 대표=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서양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샘표식품에서 기획이사·전무이사를 거쳐 97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다.

◆샘표식품=한국 시장 점유율이 약 50%인 간장을 비롯해 된장·고추장·식초·소금·차·면류 등을 생산하는 식품기업이다. 지난해 미국·중국·중동·러시아 등 62개국에 1100만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지난해 상하이(上海) 현지법인을 설립했으며 중국 중산층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박 대표의 조부(박규회·작고)가 1946년 창업해 부친(박승복 회장)을 거쳐 3대째 가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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