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고 싶어서 … 문신은 나만의 유니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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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국내 일부 사우나에서 볼 수 있는 경고문이 미국 프로농구(NBA) 팀 라커에 붙어 있다면 선수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입장 가능한 선수는 몇 명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NBA 선수들에게 문신은 거의 필수품이다. 미국 LA 타임스는 얼마 전 ‘2007년 기준, 미국 프로농구 선수 중 75%가 문신이 있다’고 보도했다.

데이비드 베컴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던 2007년 옷을 벗어 서포터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베컴은 1999년 첫째 아들 브루클린의 출생을 기념해 어깨와 등 윗부분에 걸쳐 커다란 수호천사를 그렸다. 천사위에는 둘째 아들 로미오의 이름을 새겼으며, 왼팔에는 아내 빅토리아의 이름을 힌두어로 새겼다. 손목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등 번호인 7을 로마글자(VII)로 그렸다. [중앙포토]


국내 프로농구팀에 와 있는 미국 선수들 중에도 문신 없는 선수는 찾기 힘들다. KCC 외국인 선수 마이카 브랜드는 “너무 많아 몇 개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동부에 대체 선수로 왔던 백인 저스틴 알렌은 “처음엔 호기심이었는데 한 번 하고 나니 계속 새기고 싶더라”고 했다.

한국의 사우나처럼 미국에서도 문신은 터부였다.

농구 코트에 문신을 처음 하고 나타난 선수는 NBA에서 코트의 악동으로 불리던 데니스 로드맨이었다. 사고뭉치였던 그는 등에 여자의 나신을 문신해 파문을 일으켰다.

앨런 아이버슨(디트로이트)은 문신을 유행시켰다. 문신이 하도 많아 ‘벽지’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실력도 뛰어나 다른 선수도 문신을 하고 싶게 만들었다. 한 농구 잡지가 그의 사진에서 문신을 지웠다가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미국뿐이 아니다. 축구의 마라도나(아르헨티나)는 체 게바라의 문신을 했고 데이비드 베컴(잉글랜드)도 문신투성이다.

문신은 깡패들의 서약만은 아니다. 여러 문화권에서 문신을 쓰는데 통과의례의 표현이나 업적, 종교적·정신적 신념, 가족에 대한 사랑을 몸에 새긴다. 용기, 행운, 퇴마, 건강, 성적인 유혹, 다산을 상징하는 일종의 부적으로도 쓴다. 공동체에서의 추방이나 노예를 의미하는 징벌적 문신도 있다.

선수 중엔 가족 사랑을 마음뿐 아니라 몸에 새기는 선수가 눈에 띈다. NBA 농구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는 부인과 딸에게 헌사하는 문신을, 라마 오돔(이상 LA 레이커스)은 죽은 아들의 초상화를 팔에 그렸다. 국내 농구 KCC의 브랜드는 “가장 마음에 드는 문신은 딸을 생각하면서 등에 새긴 천사 문신”이라고 말했다.

아이버슨은 자신이 나온 대학 마스코트(불독), ‘가장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신념 등을 몸에 새겼다. 섀킬 오닐(피닉스)은 다른 선수보다 자신이 훨씬 뛰어나다는 뜻에서 수퍼맨 로고를 왼쪽 팔에 썼다.

라시드 월러스(디트로이트)는 “잘 보이는 곳에 나이키나 아디다스 문신을 하고 돈을 받아도 되겠다”고 했다.

자신의 몸을 문신 예술을 위한 캔버스로 생각해 죽음의 신이나 해골, 사자를 새겨 넣는 경우도 많다. 한때 한자 문신이 유행하다가 산스크리스트어·아랍어 등으로 번지더니 요즘엔 한글 문신도 나온다.

문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패션이다.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하는 팀 스포츠에서 남과 달라 보이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다. 그러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그린 문신이지만 모두가 문신이 있기 때문에 문신 없는 선수가 더 개성적인 선수가 됐다. NBA에 있는 유럽 선수들은 아직도 문신을 꺼린다. 미국 주류사회에서도 문신이 아직 공인받은 것은 아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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