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4자회담 인내로 이끌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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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모색하기 위한 제네바의 4자회담 1차 본회담이 10일 끝났다.

4자회담 구상이 나온 지 1년 8개월이나 공들여 가까스로 마련된 본회담이 이틀간의 모임 끝에 실질적인 문제에 대한 토의나 구체적인 합의 없이 끝났다고 실망할 일은 아니다.

북한이 종래와 마찬가지로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되풀이하고 한반도 평화를 보장할 만한 구체적 합의점이 없었던 것을 들어 비판적인 의견도 있지만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회담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1차 본회담에서 눈여겨볼 점은 다음 회담을 내년 3월에 열기로 하는 등의 몇 가지 절차문제에 관한 합의다.

북한이 남북한간 정치적 접촉을 꺼려 오랫동안 대화가 단절돼 오던 상황에서 4자회담 형식이긴 하지만 직접대좌를 계속키로 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아울러 4자회담을 냉소적으로 대하던 북한이 이 정치회담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진입하는 데 동의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북한이 기조연설에서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 필요성, 주한미군 철수주장을 되풀이했지만 이는 예견됐던 일이다.

북한측이 예비회담에서 이 문제를 본회담의 의제로 주장했을 때 우리측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긴장완화를 위한 제반문제' 라는 포괄적 의제에 담자고 제의해 북한의 동의를 받아 낸 것은 본회담에서의 토의를 전제로 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북한이 종전 주장을 되풀이했다고 4자회담 전망을 비관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1차 본회담이 협상과 토론의 자리였다기보다 참가국의 기본입장을 밝히는 기회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처음부터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할 일 또한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네바 4자회담은 인내심을 갖고 우리가 가야 할 긴 여정 (旅程) 의 시작으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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