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내를 버려야 하겠습니까” → “저의 집에서 받아 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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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 얘기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은 어느 날 인수위 출입기자들에게 “대통령이 돼도 별 게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좋은 음식만 먹으며 호강할 줄 알았는데, 집에 들어갔더니 아내가 라면을 끓여먹고 있더라”는 거였다.

노 전 대통령은 7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돈을 “저의 집에서 받아 사용했다”며 부인 권양숙 여사를 지목했다. 그 말이 요즘 화제다.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장인의 부역 문제가 논란이 되자 “그렇다고 사랑하는 아내를 버려야 하겠습니까”라고 두둔했던 것과 비교하는 사람도 적잖다.

노 전 대통령에게 권 여사는 ‘젊어서 고생만 시켜 늘 미안한’ 존재였다. 둘은 1971년 고향인 김해 진영읍에서 만나 2년의 연애 기간을 거쳐 73년 결혼했다. 군을 제대한 남편이 동네 앞 산기슭 토담집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아내는 매일 아들을 업고 점심을 날랐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를 “세 살배기 신걸이(아들 건호씨의 옛 이름)의 재롱과 아내가 시험을 앞두고 마늘을 듬뿍 넣어 고아온 삼계탕은 귀한 추억”이라고 회고하곤 했다. 시어머니가 농사를 도운 일꾼들에게 새경을 박하게 주자 권 여사가 몰래 더 집어줬다가 “손이 크다”고 혼쭐났다는 일화도 있다.

권 여사의 아버지 고(故) 권오석씨는 남로당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결혼을 앞두고 노 전 대통령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다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사법연수원을 마쳤을 때도 장인 문제 때문에 판검사를 하지 않는다고 집안 사람들이 아내를 오해할까봐 변호사 개업을 미루고 판사 생활을 7개월 남짓 했다.

힘든 시절을 함께한 만큼 노 전 대통령의 아내 신뢰는 각별했다. 그는 94년에 쓴 자서전 형식의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에서 권 여사를 ‘내 아내 양숙씨’라고 칭했다. 노 전 대통령이 정치에 회의를 느끼고 89년 13대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을 때 “국회의원이 됐으면 끝까지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번복하게 한 이가 권 여사다. 노 전 대통령은 “그 일 말고는 아내가 내 일에 관해 일언반구라도 간섭한 적이 없었다”고 적었다.

노 전 대통령이 재야 변호사 활동, 정치 입문, 낙선 등 역경을 맞을 때마다 권 여사는 “누구보다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지”였다. 특히 불 같은 성격의 노 전 대통령에게 권 여사는 진정제 역할을 했다. 인수위에 참여했던 한 민주당 인사는 “토론하다 노 전 대통령이 흥분해 격앙된 감정을 드러내곤 했다”며 “그럴 때면 권 여사가 노 전 대통령의 무릎을 손으로 지긋이 눌렀고 노 전 대통령의 목소리는 금세 가라앉았다”고 말했다.

권 여사는 남편이 대통령 당선 뒤 “정치인 아내로서 겪어온 모든 고통을 보상해 주는 듯했다”고 털어놓았다. 재임 중 노 전 대통령은 연설에서 “내가 싫어하는 신문을 이 사람이 읽고 있어 면박을 줬다” “집사람이 이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했다”는 식으로 즐겨 인용하곤 했다. 박 회장에게서 시작된 검찰 수사의 칼날은 이런 노 전 대통령 부부에게로 향하고 있다.

선승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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